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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이전에 내가 알던 죽음은 정전과도 같았다.

티비에서 임종의 순간을 연기하는 이들은 마지막까지 기를 쓰고 타올랐다.
호흡도 눈빛도 끝끝내 삶을 부여잡고 있다가 갑자기 찾아온 암전처럼 움직임이 뚝 정지되어 버리는.

그러나 아빠의 임종을 지키면서 보았던 인간의 죽음은 그렇게 막대 부러지듯 생이 순간에 툭하고 단절되는 것은 아니었다.


아빠가 멈추던 날, 아빠는 엄마를 눈앞에 두고 기력 없이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하고 애틋한 표정으로 하염없이 엄마를 바라봤다.
그러다 말할 기운이 없는지 눈으로만 이야기했다. 1초라도 놓치고 싶지 않은 듯 엄마의 움직임만을 훑었다.

어느 순간엔가부터는 호흡만 자잘히 느껴지고 눈동자의 움직임은 없었다. 엄마도 아빠의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고 내내 앞을 지켜 주었다.
그 호흡이 점차 잦아들어 더는 느껴지지 않았을 때에도 아빠가 여전히 생의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걸어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 미동도 없지만, 아주 느려진 것일 뿐 부러지거나 꺼진 것은 아니었다.

아빠의 몸과 연결된 기기가 끝없는 일직선을 그릴 때, 비로소 아빠의 생은 걸음을 멈췄다.



이전의 내게 죽음은 생의 on/off 였다.
사람은 그렇게 한 순간에 부러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빠를 통해 본 죽음은 너무도 나른했다.
태엽을 등에 단 채로 부던히 움직이다 점차 느슨해지며 아주 천천히 움직임을 끝내는 것이었다.

삶은 부러지는 게 아니라, 잦아드는 거더라.
움직임을 거두고, 빛깔을 거두고, 소리를 거두고. 그러다 아주 작은 호흡까지 거둬내 그대로 걸음을 멈추는 것.


그 나른한 과정이 하나하나 각인되었을 때 뭔가 하얀 방 같은 막막한 덧없음이 밀려왔다. 그리고 아주 오래, 마음 어딘가를 돌아다니다 가끔씩 나를 하얗게 물들여 버린다.

동생이 그 자리에 없었어서 다행이다. 막연히 슬픈 것이 어쩌면 낫지 않을까. 애달프고 그리운 것까지가.



문득 아빠의 마지막 삶의 날에 보았을 새벽이 아쉽다.
간이침대에서 잠들어있던 그 때, 아빠는 밤을 지새우고 말없이 일출을 바라보았다고 했다.

삶에 마지막으로 밝아오던 아침을 함께 바라봤다면 힘겨웠을 마지막 걸음을 뜨겁게 응원해 줄 수 있었을까.
그가 홀로, 부서지는 햇살과 함께 흩어져갈 때 내가 그 정신을 꼭 붙들어 주었다면
조금은 더.. 곁에 머물러 주지 않았을까.

철나라
2023-07-13 14:07:47

그렇게 이 또한 추억 속으로 사라졌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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