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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나라
이제는 완성할 때다. 중반기의 완성을 위해
씁쓸한 승리

내가 아니라 우리라고 이야기를 해야겠다.

우리는 1983년 H중공업 직업 훈련생으로 모였다.


우리 반 인원은 43명, 대부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을 하기 위해서 모였다.


정식으로 시험을 보고 입사를 해야겠지만, 학력도 그렇다할 기술도 없는 우리는 이렇게 훈련생으로 들어오면 대기업에 취직할 기회를 얻기 때문이다.


우리 중 내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또 누가 반장을 할 것인가 라고 물었을 때 내가 손을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 43명은 1년 과정의 직업 훈련을 시작했다. 1년과정의 훈련이란 것이 그야말로 반복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4개월여가 흐른 뒤 현장에 급한 일이 생겨 단순 노동 인력으로 훈련생이 동원 된 것이다.


사실 이런 일 쯤이야 단순한 반복 훈련에서 우리를 건져준 매우 고마운 일 일수도 있었다.


하지만 뭔가 변화를 추구하는 우리 따분한 인생들은 회사를 상대로 훈련생이 직접 생산활동에 투입 되었다고 생산 수당을 요구했다.


사실 돈이 필요했던 것도 사실이다.


현장 생산 지원활동을 중단하고, 휴게실에 모여서 노래를 부르며 박수를 치고 태업을 시작했다.


그렇다고 그렇게 조직적인 노동운동도 아니었다. 그냥 일도 하기 싫고, 또 훈련도 받기 싫고, 세월이 빨리 지나가 정식 사원이 되고 싶은 마음 뿐이니, 태업이라기 보다는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는 게임 정도라고 생각했다.


의외로 우리는 단합이 잘 되었다. 반장인 나의 지휘에 일사불란하게 따라왔다. 우리는 노동부에 제출할 탄원서를 작성해서 모두가 지장을 찍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가지고 훈련소장과 담판을 지었다.


생산 수당을 주지 않으면 노동부에 정식 탄원을 할 것이라고 했다. 사실 우리는 노동부가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몰랐다. 그냥 그런 것이 있다고 알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 공갈 협박은 먹혀 들어갔다.


회사에서는 직업 훈련생에게 4개월동안 생산 지원을 인정하고 잊어버릴 수 없는 금액 12만 4천원 씩을 모두 받았다.


기다리던 1년 과정이 모두 끝났다.


최종적으로 입사자를 발표했다.


통상 6개월 훈련생들도 보통 7-80%가 입사가 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19명 만이 취업되었을 뿐 나머지 인원은 입사가 허가 되지 않았다.


합격자들이 첫 출근을 하는 날, 그날 아침 출근 시간을 평생 잊을 수 없다.


일년 과정을 수료하고 그냥 회사를 떠나야 했던 우리의 동료 24명 그들의 쓸쓸한 눈 빛 그들의 패배감, 그들은 이제 그냥 한 사람의 실업자로 사회에 내다 버려졌다. 다시 훈련생이 될 기회마져 빼앗겨 버린 것이다.


나는 이들을 이끌고 회사와 당당히 겨뤄서 승리를 이끌어 냈다.


그러나 그 승리의 결과는 이렇게 처참한 결과를 낳았다.


나는 평생 그 작은 승리에 도취되어 의기 양양했던 나의 모습을 후회한다.


그냥 우리가 져 주고 그 대가로 보다 많은 사람이 취업되어 함께 할 수 있었다면 그 보다 더 큰 승리가 있었겠는가?


순간의 작은 승리로 우리는 우리의 반 이상을 그보다 훨씬 큰 꿈을 접어 버리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것의 책임은 바로 내게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때 충분히 우리를 설득해서 작은 양보로 큰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았는가 생각하고 있다.


작은 승리와 진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승리 그것은 도리어 작은 패배가 큰 승리를 얻을 수 있다는 좋은 교훈을 내게 주었다.


아직도 이 진리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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