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만년아가씨
...
엄마의 냉장고

동생 결혼식으로 한 일주일 친정에 있는 동안 그 어느때보다 일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여기저기 인시하느라 치르는 잔치 덕분에 먼지 쓸어내고 닦아내고 ,음식 하고,설겆이하고...

새언니가 있긴 하지만 조카보느라 바쁜 것 같고 해서 일부러 부르지 않았다는 엄마의 말에 그래도 엄마는 배려심 깊은 시어머니구나 싶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딸인 입장에서의 생각이었나 보다.

 

예상대로 새언니는 불만이라기보다 엄마와 친해지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 긴 시간 내게 토로했다.

그런 얘길 시누이인 내게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걸 보면 내가 참 편하고 자매같은가보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론 그것도 고마운 일이니까.

 

그런데 새언니도, 엄마도 알게되면 참 좋겠다고 생각한 게 있다.

사람관게에선, 특히 시부모와 며느리 사이에서 누구의 잘못이 아닌데도 어긋나고 이상하게 돌아가는 상황과 감정이란 건 얼마든 일어날 수 있다.

가족이라 남보다 기대하는 마음때문에 뜻하지않게 서운한 마음 생기기도 하고, 서운하게 만들기도 하고.

나도 그렇더라 라고 새언니에게 말해주었다.

내 잘못도 아니고 시부모님 잘못도 아닌데 잘하고 싶고 친해지고 싶지만 의도와 다르게 멀어진다고.

 

엄마의 냉장고 얘기가 나왔다.

18년동안 써온 냉장고가 얼마전에 물이 줄줄 새서 이번에 동생 결혼식 하면서 바꿔야 한다고 엄마가 식구들에게 말했단다.

갓 올케가 된 동생의 안사람이 '어머님, 티비와 냉장고 사드릴테니 같이 가셔요'라고 하는 걸 내가 중간에서 말렸다.

'사 주는 건 내 부모님 편하시게 하는 일이니 시누인 내입장에선 좋지만 두 사람 모두 두 집안  넉넉치 않은 형편에 결혼식이고 살 집이고 어렵게 준비했을텐데 두 사람 살림에 보태라'고.

 

엄마는 옆에서 아무말하지 않았는데 나중에 원망 비슷한 소릴 내게 했다.

어떻게 보면 잘 돌아가는 형편에 내가 일을 파토낸 거나 마찬가지다.

누이가 되어서 동생 장가가는데 크게 돕지 못해 죄책감이 컸는데 그런 소리까지 들으니 짜증이 밀려왔다.

고장난 냉장고야 고쳐 쓰면 될 테고 냉장고 정리만 잘해도 앞으로 몇년은 더 쓸수있겠다고.

 

막상 그렇게 말은 했어도 가슴은 아팠다.

자식들이 좀 더 능력있으면 그깟 냉장고 몇십개라도 사줄수 있을텐데.

세 명의 자녀들 모두 대학 보내고, 시집 장가 다 보내놔도 고물 냉장고 하나 못바꿔 줄만큼 여유가 없다니 엄마도 허무하고 기막히지 않을까.

엄마는 지금 혹시 아들 장가보내면서 새 살림 장만하려 하는 염치없는 시모라고 자책하고 있진 않을까.

 

여러 생각을 하다보니 여지없이 머리가 아프다.

엄마, 조금만 더 참아. 고물 냉장고로 몇 개월만 더 버텨봐.

딸래미가 200만원짜리 지펠로 바꿔줄게, 응?

 

전화로 이렇게 얘기하면 분명 엄마는 됐다고, 내가 괜한 얘기 꺼냈다고 , 잊어버리라고 할테지...

엄마는...내게 있어...

돈을 벌어야겠다고, 부자가 되고 싶다고 결심하게 만든다.

 

 

 

 

 

만년아가씨
2011-12-08 23:29:43

비밀 댓글.
댓글 작성

일기장 리스트

인생은살아지는걸까,살아가는걸까? 250 정이의 발자국 8

히스토리

키쉬닷컴 일기장
일기장 메인 커뮤니티 메인 나의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