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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아가씨
...
나비

보드 게임에 한창 미쳐 있을 때 이미 어느정도 수준에 올라 있어도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을 이겨보려고 용을 썼었다.

 

이번만 이기면 돼, 이번엔 졌지만 다음 판에는 어쩌면......

눈앞에 보이지 않는 상대건만 다행히 저쪽이 내 의중을 알아차리고 방을 나가지 않고 진지하게 대전을 받아주다 내가 이기게 되면 그때의 희열은 말로 할 수 없다.

아무리 작은 내기건, 경기건, 게임이건 이기는 건 좋은 거니까 말이지.

 

하지만 세상은 언제나 나보다 잘난 사람들로 북적댄다.

그 잘난 사람들을 꺾어보려고, 정상에 서보려고 투지를 불태워도 현실은 게임처럼 이번 판이 끝나면 매번 새로운 판 세트가 내 앞에 곱게 차려질 리는 만무하다.

생을 마감할 때까지, 한정된  시간을 어떻게 살아내느냐는 오롯이 개인의 몫이다.

 

 

 

 

 

 

 

여기서 확장되는 생각 하나,

 

 

 

20대 초반부터 나는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 에 나오는 주인공 애벌레를 내 삶에 대입해 왔다.

우리네 삶은 대부분이 땅바닥을 기어다니거나 정상에 뭐가 있는 지도 모른채 남을 밟고 기어올랐다 다시 바닥으로 곤두박질 치길 되풀이하거나 아주 드물게는 나비가 되고 싶어하기도 한다.

 

한창 꿈이 클때는 자신이 언젠가는 나비가 될 수 있을거라 생각하기도 했다.

"나비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꼬마 애벌레처럼 오직 그것만 바라보고 세상을 탐험해 왔다고 생각했다.

 

땅바닥에 기어다니는 삶을 사는 애벌레 중엔 "나비? 그게 뭔데, 먹는거야?"라거나 "나비가 되는 건 상상에서나 가능하지 현실에선 불가능해."

라고 자위하는 애벌레도 있을테고

"나비? 흥, 그런 건 누군가 지어낸 얘기야. 애초부터 존재하지도 않는다고."라는 애벌레도 있겠지.

 

마치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듯 무수히 오르고 떨어짐을 반복하는 생활에 익숙해져 더이상 창공을 나는 나비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애벌레.

 

나는 아직도 바닥을 기어다니고 있는 애벌레다.

 

이전의 모습을 완전히 벗고 창공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얻게 되는 나비가 되려면 

번데기가 되어 인고의 시간을 거쳐야 한다.

 

세상의 모든 이들은 꼬마 애벌레로 태어나지만 그가 어떤 생활을 하는 것과 상관 없이 나비가 될 소양을 처음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거라 생각했다.

 

"지금과는 다른 존재가 될 거란 꿈을 갖고 오래오래 견뎌야 한단다. 고통스럽고 지루하겠지만 조바심 낼 필요는 없단다."

 

하도 오래전에 읽은 책이라 빌어먹을 나비가 뭐라 대답했는지는 정확히 기억 안난다.

나는 그저 하찮은 꿈틀이에서 일약 하늘을 날아다니는 초능력을 가진, 게다가 일찌기 본 적 없는 하이 퀄리티의 패션 감각을 자랑하는 날개를 가진 나비가 부러웠을 뿐인지도 모르겠다.

 

 

 

 

확장되는 생각 둘,

 

 

 

정말 세상의 모든 이가 나비가 될 소양을 가진 애벌레로 태어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가령, 난 사마귀로 태어났는데 "나도 나비가 되고 싶어요."란 에디슨 같은 엉뚱한 희망을 품는 건 아닌가....

 

물론 책의 교훈은 나비건 사마귀건 따위와 전혀 상관없다.

진정한 자아를 찾는 여정은 어렵고 힘들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거지.

 

분명한 건 태어난 본 모습과 전혀 다른 차원의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거다.

애벌레에서 나비로 변태하는 과정이 너무나 드라마틱해서 좋은 동화의 소재가 된 것이지.

 

그런 변화라면 물론 용팔이(용+파리,dragon+fly, 즉 잠자리)도 있다.

더러운 물 속에서 유충 시절을 보내다 용팔이로 화려하게 변신을 하잖아.

 

아주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나 앞으로 내 수명이 얼마나 되느냐에 상관없이 나는 여전히 용팔이나 나비가 되고 싶어한다.

 

끝까지 나뭇잎이나 갉아먹거나 땅바닥을 기게 된다해도 나비나 용팔이가 되고 싶어 그걸 바라보고 사는 것과 아예 자포자기 하고 사는 것은 분명 다르지 않을까.

 

물론 내 생각이 부질없거나 틀릴 수도 있다.

그런데 적어도 살아갈 희망은 품게 된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던가.

개똥밭은 커녕 온통 진흙과 가시밭길을 헤매는 것처럼 아프고 상처투성이다.

그래도 갈 데까지 가봐야지.

운이 좋으면 정말 용팔이나 나비가 될 지도 모르고,

진창 속에서 뒹굴며 앞으로 나가는 내 모습이 혹시 누군가에겐 자극이 될 지도 모르니까.

 

 

 

 

HEART
2012-06-05 18:58:41

공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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