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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아가씨
...
김장

어제 오늘 김장을 했다.

 

늘 시어머님과 둘이서만 하던 김장을 올해 초에 결혼한 도련님 덕택에 처음 으로 동서와 도련님까지 합세해 네 명이서 김치를 담았다.

 

낚시를 좋아하시는 아버님은 새벽같이 일어나서 배추씻고 옮기는 걸 도와주시곤 곧바로 낚시터로 직행하셨다.

 

작년에, 그러니까 결혼 전에 김장할 때 놀러와서 김치 버무리는 걸 도왔던 동서는 '아, 김장은 별 게 아니구나'생각했었단다.

 

그런데 올해는 밭에서 재료뽑아오기, 손질하기, 씻기, 절이기,양념만들기,버무리기 까지 모든과정을 함께 하면서 '정말 죽을것 같다'로 생각이 바뀌었단다.

 

"올해는 재료가 풍년이고 양이 많아서 일년 내내 실컷 먹겠구나."

라는 어머님 말씀에 "앗, 그럼 내년엔 우리 김장 안하는 거예요?"

하며 눈을 초롱초롱 빛내는 모습에 웃음이 터졌다.

 

생긴 것만 보면 조숙하고 얌전할 것 같기만 하지만 동서의 귀여운 구석에 추운 날씨도 견딜 수 있을만큼 나름 즐거운 김장이었다.

 

어머님도 재미없는 큰며느리랑 둘이서 일하는 것보다는  장가가더니 갑자기 효자가 된 둘째 아들이랑 알콩달콩 수다떨어가며 장난치는 둘째 며느리 모습을 보며 김치를 담그는 재미가 쏠쏠하셨을 터다.

 

어쨌거나 좋았다.

장가가나 안가나 똑같은 큰 아들보다 색시랑 노닥거리고 김장이라는 집안 행사에 즐겁게 참여하는 도련님이 어른스럽고 또 믿음직스러워 보임과 동시에 두 내외가 행복해보여 보기가 참 좋다.

 

큰 아들은 뭐했냐고?

"김장? 어, 열심히 담궈 놔. 맛있게 먹어주께."

정말 뱉은 말을 잘 실천하는 큰 아드님은 식구들 성화에 이번엔 왠일로 쪽파를 까주셨다.

딱 20분만.

 

그 이후론 무릎이 아프다며 바람과 함께 휑하니 사라지셨다지.

그러게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래도 죽어라 말 안듣는 우리 어머님의 큰 아드님,내 남편.

 

그래, 변하고는 있지만 사람이 너무 변하면 그것도 이상한 법이지.

20분 쪽파 까준 것도 지금은 감지덕지 해야 되겠지.

 

"하도 엄살을 떨어서 쟨 못 부려먹어."

어머님과 아버님은 큰 아들에 대해 입을 모아 드디어 결론을 이렇게 내리신다.

 

예년보다 두배 이상 많은 김장재료 손질을 하면서 그간 이 많은 일을 다 하시는 어머님의 부지런함은 내가 쫒아가기 힘들다고 새삼 혀를 내둘렀다.

 

그런데 평소 안쓰는 근육을 써서인지 어제 종일 재료를 쭈그리고 앉아 씻었더니 밤에 잠잘때 너무 괴로웠다.

 

일어나니 누구한테 흠씬 두들겨 맞은것마냥 삭신이......

 

어제 오늘 정말 수고했구나.

다독다독....

 

스스로에게 이렇게 칭찬해주고 컴터 앞에 앉아 일기를 쓰는 이 시간이 참 행복하다.

 

엉덩이는 뜨뜻하고 배는 부르고 "수고했다, 푹 쉬어라"라는 부모님 말씀에 오랜만에 뿌듯하다.

 

내일부터 나 또다시 마음이 추워지는 건가? ㅋㅋ

치열하게 먹고 살 궁리를 해야하는구나. 음......

 

HEART
2013-11-18 00:57:01

비밀 댓글.
만년아가씨
2013-11-18 11:55:09

비밀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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