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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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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장 담기

어머님이 전화하셨다. 함께 고추장을 담그자고.

 

집에서 쉬고 있는데 생각지도 못한 일거리가 들어와서 귀찮은 건 사실이었지만 곧 생각을 바꿨다.

 

언젠가 한 번은 수퍼에서 된장 고추장을 사려다 생각보다 너무 비싸 깜짝 놀란 적 있다.

브랜드가 있는 장은 그렇지 않은 것보다 적어도 10-20퍼센트는 비싼 듯 했다.

 

그래서 믿을 수 있고, 깨끗하며, 보다 다양하고 깊은 맛이 나는 전통 장을 어머님처럼 담가봐야지 하고 줄곧 생각하던 터였다.

 

하지만 살림 내공이 깊지 않은 나로선 전통 장 만들기는 그저 어려운 숙제였다.

어머님과 고추장 된장을 담는 게 첨은 아니지만 옆에서 돕고 보면서 복습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니 즐겁게 부르심에 응했다.

 

1.  먼저 엿기름 푼 물에 맵쌀가루와 찹쌀 가루를 혼합해 풀을 끓인다.

이때 바닥이 눋지 않도록 처음엔 도토리묵 만들때처럼 계속 주걱으로 저어줘야 한다.

 

2.  풀이 다 끓으면 한 김 식힌 후 고추가루와 메주가루를 2대 1의 비율로 풀어 덩어리가 지지 않도록 열심히 저어준다.

 

3.  기호에 따라 조청엿을 첨가해도 좋다.

 

4.  소금으로 간을 해 준다.

 

5.  장 담을 독을 미리 뜨거운 물로 소독해 두고 만들어 놓은 장을 채워 넣는다.

 

6.  입구를 망으로 막고 그 위를 독 뚜껑으로 단단히 덮는다.

 

7.  해가 잘 드는 옥상에 보관한다.

 

 

"얘, 작년에는 고추가 비싸서 고추장 만드는 데 돈이 많이 들었어. 올해는 그나마 많이 저렴해서 많이 만들 수 있겠다."

김장이든 장이든 어머님께 공수 받아 먹는 처지라 늘 죄송하다.

 

하지만 아들네 형편이 좋지 않다는 걸 아시는 시부모님은 요구하질 않으신다.

마음이야 생신 명절, 하다못해 이런 작은 일마저 꼬박꼬박 용돈으로 채워드리고 싶지만 뭐 그야말로 마음 뿐이다.

사실 우리보다 시부모님이 더 여유로운 분들이시니까 하는 변명도 올해면 끝날 듯 싶다.

내년엔 두 분 모두 시골로 내려가 사신다니까 그때는 아무래도 신경을 써야하지 않을까.

 

아무튼 김장과 장 담그기가 끝나면 내 입장에선 일년의 큰 집안행사가 끝난 셈이다.

뭔가 홀가분하달까. ㅎㅎ

 

아 그렇지, 좋은 장맛은 만드는 이의 정성과 그 해의 일기가 좌우한다.

 

재료를 준비하는 어머님의 정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남은 건 장이 잘 익어가도록 하늘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내년엔 더 좋은 고추장맛을 볼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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