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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아가씨
...
소문

요 근래 피곤해서 거의 꿈을 안꿨는데 간만에 깨고나서도 기억나는 꿈을 꾸었다.

 

내 뒤에서 소근소근 속닥속닥대는 소리가 처음엔 귀가 간지러울 정도로,

그러다가 엄청난 소음이 되어 귀를 막고 싶어질 즈음

어린 시절 잠깐 같이 자란 동생과 별로 친하진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존경했던 친구가 다이어리 한권을 건네며 이렇게 물었다.

"언니, 여기 쓰여있는 이야기 사실이야?"

"소문 다 났어. 너에 대한 이야기 다들 알더라."

 

초등학생 노트마냥 유치해보이는 다이어리와 그 속의 글을 보던 나는

얼굴이 붉어졌다.

전혀 말이 안되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대부분 사실은 아니었다.

기가 막혔고 화가 난 마음을 숨기고 이렇게 얘기했다.

"이거 누구 다이어리야, 그리고 사실이면 니들이 어쩔건데?"

잠깐 눈치를 주고받던 둘 중에 별로 친하지 않았지만 존경했던 친구쪽이 조심스레 말했다.

"주성이가 나한테 준거야."

주성이라면...교회에서 학생회시절을 같이 보낸 남학생 이름이었다.

잘 알지도 못했고 친한 건 더더욱 아니었다.

그런 녀석이 이런 말도 안되는 비겁한 짓을 하다니, 용서할 수 없었다.

당장 찾아내 확인되지도 않은 사실을 일기에 쓰고 내 지인들을

찾아다니며 소문을 내고 다니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

"그 자식 어딨어?"

그때부터 나의 '주성이 찾기'는 시작되었다. 

 

의식이 주성이를 찾아 과거로 가고 있었다.

나에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들, 나도 모르게 내가 상처를 주었을지도 모를 사람들이

달리는 버스밖의 풍경처럼 휙휙 지나쳐갔다.

그리고 아이들....

 

죄책감, 그렇다.

소문의 진앙은 그 감정일 것이다.

견딜 수 없이 괴롭고 가슴이 답답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우중충한 하늘에서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생전 처음보는 낯선 운동장 공터에서 노란 우비를 입고

검은 우산을 쓴 남자 아이 하나가 보엿다.

 

작은 몸으로 발 밑에 고인 빗물 웅덩이를

우산을 쓴 채로 깡총깡총 뛰다가 나를 발견하곤 씨익 웃었다.

나도 따라 웃어주었다.

"거기서 혼자 뭐하니, 동민아."

"차 기다려요. 그런데 선생님은 거기서 뭐하세요?"

"집에 가는 차가 오려면 아직 더 기다려야해. 친구들이랑 같이 있지 않고..."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동민이는 개구쟁이에다 순한 아이엿지만

내가 특별히 예뻐했다거나 기억에 남을만큼 특이한 구석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고보니 개인적인 사정으로 졸업도 시키지 못하고

담임이 바뀌는 혼란을 겪어야 했던 마흔 명의 내 아이들이 생각났다.

 

잠에서 깨고보니 그 몽롱하고 찝찝한 느낌은 더했다.

글을 쓰는 지금은 꿈 내용의 90퍼센트를 잊었지만

정작 일기속의 소문의 내용이 뭔지도 모르겠고 짐작하는 소문의 주인공은

단 한명도 안나왔다.

평소에 거의 생각할 일이 없는 여자 동생과 친구,

주성이란 녀석은 말할 것도 없고 동민이란 아이조차 지금은 얼굴조차

겨우 기억할 정도다.

 

소문이란 그런 것이다.

뒤통수가 가려워 뒤 돌아보면 휙 하고 내 눈을 피해 어디론가,

하다못해 내 그림자 속으로 모두 비집고 숨어 버린다.

다시 앞을 보고 걸으면 참을 수 없는 수근거림으로

절대로 나만 알 수 없게 자기들끼리의 비밀을 공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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