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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아가씨
...
점장

나보다 몇 살 연상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녀는 그 나이 같지 않게 어려보였다.

처음엔 서글서글하니 성격도 좋아보였고 이해심도 많아 보였다.

 

그런데 가까이서 겪어 본 그녀는 가끔은 심하다 싶을만큼 고지식하다.

공무원 생활을 오래해서 그런가.

 

점장이라는 직위를 갖게 된 지 일년이 넘었다고 했다.

오랫동안 주부로 살아서 그런 습관이 남아 있는 건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직원에게 너무 박한 점장이다.

 

밤 9시 10시까지 잔업을 시켰으면 수당을 주는 게 당연하고

굳이 거기까지도 안 바라지만 저녁은 먹여야 하는 것 아닌가.

직원들 회식은 몇 달에 한 번씩 있을까 말까, 그 마저도 자신은 쏙 빠진다.

하루종일 직원들이 땀 흘려 열심히 구워 낸 빵, 행여 하나라도 허튼 데로 샐까

눈에 불을 켜고 있고 그거 사가겠다는 직원에게도 단 1프로도 깎아주지 않고

판매가격 모두를 받겠단다.

 

추석을 앞두고 선물 세트를 만들어야 되니까 직원들에게 평일 하루를 쉬는 대신 일요일에도 나와서 일을 하라고 하더니 알바인 내게조차 휴일에 나와줄 수 없냐고 하더라.

 

일한 지 얼마되지 않는 시점이라 별일 없으면 그러마고 약속하고 나갔지만

특별 수당을 받는 것도 아닌데 기분이 썩 좋을리는 없었다.

그런데 내가 휴일에 나와 일하는 대신 평일에 쉬게 해달랬더니

젊은 사람이 왤케 저질 체력이냐고...!

 

아니, 내가 무슨 에너자이저냐, 수퍼우먼이냐,용가리 통뼈냐?

직원들은 새벽부터 나와 그 날 일 마칠때까지 밤이 늦어도 일하는데

자신은 기껏 나와 비슷한 시간 정도만 매장에 나와 일하면서

나더러 휴일도 없이 일하라니...

이봐요, 점장님. 나도 마냥 집에서 놀고만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평일엔 아침 일찍부터 학원 가서 공부하고 마치자마자 점심은 먹는 둥 마는 둥

이리로 달려온단 말이에요!

 

라고 하고 싶었지만 소심한 내가 그런 말을 할 수 있을리가 없다.

 

 

우와, 나와 달리 꼬박 꼬박 월급 가져다주는 남편도 있는데 이건 좀 심한 거 아닌가.

그렇지만 두 아이 밑으로 들어가는 돈이 무시할 수 없는 금액일테고 또 내가 모르는 금전적 사정이 있는 것일지도 모르니 그렇게 살아온 것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언젠가 그녀도 알게 될까.

월급쟁이 점장이라도 경영자의 마인드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사업이 발전할 수 없다는 걸.

즐거운 작업장이 아니라 하루종일 묵묵히 일만 하는 굳은 분위기의 직원들을 보면서

갈등을 키워 나가는 게 장기적인 안목에서도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는 걸.

직원들을 위해 쓰는 식비, 회식비,간식비 같은 따위의 복리후생비를 무조건 아낀다고

생산성이나 효율성이 높아지는 게 아니라는 걸.

 

그럼에도 나는 이 일을 한 달을 넘겨 계속 하고 있다.

시작하고 일주일동안 안 아픈 데가 없이 힘들었음에도 이젠 제법 몸이 익숙해졌는지 할 만하다고 느껴진다.

최저 시급에도 못 미치는 시급을 받고 이 정도 견딘 것도 어찌보면 용하지만

생활비가 필요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이유 말고도 다른 이유는 있다.

 

바쁘게 살고 싶다.

생산현장의 감각을, 내가 몸을 움직여 일을 하고 있다는 감각은 다름 아닌 내가 살아 있다고 느끼게 해 주는 요소다.

몸은 힘들지만 관두고 싶다고, 이제 그만 포기하고 싶다고 생각될 때

계속 해야만 하는 이유와 동기를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건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어차피 알바를 끝내고 시험을 쳐 자격증을 따면 취업을 할 것이고

그 때가서 아 이 일 너무 힘들구나.

관두고 다른 일 할까?

설마하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 뿐이겠어?

라던가, 일하다가 큰 실수라도 하면 어쩌지 하고 몸을 사리면 결국 아무것도 못하게 될 테니까. 

조금 피곤해도 버틸 수 있다.

시험일이 다가와 정말 공부할 시간이 필요해질 때까지는. 

 

엄마는외계인
2011-10-13 00:58:57

그 점장 정말 고지식하네요,,융통성이 영~~-_-^
저희 사장님은 30살 남자사람인데요,,너무 좋아요^0^
오늘도 밥 사주던데요~아직 회식 못했으니 초기라 직원들 사기도 돋고,
어려운점 없는지 물어보네요~~
저희 사장도 20살부터 대학휴학하고 계속 돈 벌었대요~
그래서 고생이 뭔지 아는 사람 같아요~ 융통성도 있고~~
간식가지고 쪼잔하지도 않고,,
주부라도 융통성 문제는 틀린것 같아요,,
그 점장 저한테 걸렸음,,ㅋㅋ 할말 다 해버리고 나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만년아가씨
2011-10-14 00:13:57

싸장님 부러워요~저도 진짜 취업하면 그런 싸장님 밑에서 일해보고싶어요. 매일이 즐거울거 가터 ㅋㅋㅋ 싸장님 미남이면 금상첨화 ㅋㅋㅋㅋㅋ
비버
2011-10-17 15:38:42

나쁜 사장~~ 직원들이 곧 들고일어나겠는데요 ㅎㅎ;
만년아가씨
2011-10-20 21:11:38

직원들이 다들 순한 어린 양들 ㅋㅋ,쫓겨날까 봐 묵묵히 일만하는 분위기에요.요즘 시국이 그런가봐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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