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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아가씨
...
미* 언니

언니에게 무슨일이 있는 것 같아 학원을 마치고 면접을 보는데 따라가기로 했다.

 

백화점 vip고객 접대실에서 시급 4500원에 하루8시간 근무, 주5일 근무라는 것에 혹해서 '근무 시간이 괜찮다'며 '구경이나 함 가보자'라며 나선 것.

 

근 한시간을 기다려 면접을 겨우 보고 근무할 룸에 담당자가 카드를 긁고 들어간 내부는 상상과 달리 의외로 검소(?)했다.

 

상류층의 카페는 뭔가 특별히 럭셔리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클래식 음악 채널이 나오는 벽걸이 티비 한 대가 정면에 위치한 가운데 테이블 8대와 소파가 전부였다.

 

채광창이 따로 있는게 아니여서 은은한 반조명이 전부인 내실은 마치 조용한 미술관 이나 항공기의 퍼스트 클래스의 내부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입구엔 바로 안내 데스크가, 그곳을 따라 좁다란 복도와 연결된 상비실에서는 차를 준비하는 모양이었다.

총 두명이 서빙을 하고 한 명이 안내를 맡는 곳으로 항상 손님이 북적이거나 까다로운 손님들이 아니어서 일을 하긴 편할 거란 설명이었다.

 

답답한 걸 싫어하고 활동적인데 잘 견딜수 있을까 걱정하는 언니에게 '이런 일자리 우리 나이에 흔치 않으니 경험 쌓는다 생각하고 기회가 주어졌을때 해보라'고 말해주었다.

 

백화점을 나와 우리는 근처 싼 한식뷔페집으로 갔다.

가격에 비해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곳이고, 지난 번에 언니에게 밥 한 끼 얻어먹은 것도 있고해서 오늘은 내가 점심값을 계산했다.

 

밥을 먹으며 이야기 보따리를 푸는데 어찌나 열심히 얘길 주고 받았는지 시계를 보니 저녁시간이 가까워온다.

아무리 뷔페라지만 두끼를 거기서 해결하는 건 주인 보기 민망해 나와버렸다.

 

"난 혼자가 되면 새시집이나 가버릴거야."

뜬금없는 언니의 말에 난 한참이나 웃었다.

"왜 웃어, 이렇게 이쁜 얼굴에 아직 나이도 창창한데 그럼 늙어죽을때까지 혼자 살라고? 친구가 그러더라.

빙신아, 눈 크게 뜨고 보면 좋은 남자가 얼마나 널렸는데.나도 그 얘기 듣고 웃긴했지만 아닌게 아니라 억울해. 내가 얼마나 신랑밖에 모르고 살았는지...그러니까 자기도 만일 혼자 되면 좋은 남자 만나라고."

 

나는 도리질을 했다.

"언니, 그 놈이 그놈이여. 딴놈 만나봤자 남자들은 다 똑같아. 딴 사람 있는 줄 알아."

"아니야, 생각해보니까 결혼할 때 난 울 신랑이 젤 좋은 줄 알았거든. 연애도 제대로 못해보고 코껴서 시집 온 거 후회돼. 다시 선택한다면 이번엔 제대로 할 것 같아."

 

할머니같은 내 말이 싫을 법도 한데 언니는 내내 즐거워보였다.

내 머릿속엔 순식간에 많은 생각들로 가득찼다.

 

이런 게 여자의 인생이라고 자조하며 살기엔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배우자가 있건 없건, 여자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내 인생계획을 세우는 요즘 이런 생각들은 잡음이 된다 .

하지만.

앞날은 누구도 알 수 없다.

 

어떤 생각이 옳으냐 그르냐도 지금 이 시점에선 무의미하다.

나는 여전히 안개 속을 거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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