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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일째
민족정기 흐린 `김창룡 묘지 이장`
한 인간이 현세에서 누린 권력과 역사의 평가가 일치하는 경우는 예상외로 드물다. 굴절과 왜곡으로 점철된 우리 현대사에서는 그 편차가 더욱 크다. 우리가 현세의 영화보다 사후 역사 평가를 훨씬 중시하는 것은 역사가 지닌 엄정함과 그 교훈 때문이다. 비록 당대에는 인정받지 못했더라도 훗날 역사에서 제대로 평가받는다면 그 삶은 빛이 날 것이고, 현세에서 온갖 권력과 영화를 누렸더라도 역사적 잣대로 지탄을 받는다면 실패한 삶으로 규정된다. 민족을 배반하고 일제에 빌붙어 온갖 영화를 누렸던 친일파들이 대표적 사례다. 해방공간과 자유당 시절 `반공'을 앞세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전횡을 일삼다가 1956년 부하들에게 살해된 전 육군 특무부대장 김창룡의 유해가 3년전 국립묘지에 안장됐다고 한다. `문민정부'에서 `국민의 정부'로 넘어가는 권력 교체기에 국민의 관심이 소홀한 틈을 타 슬그머니 이장했다는 것이다. 유족의 요청도 있었지만, 특무부대 후신인 기무사 간부들이 이에 깊이 관여했다고 한다. 김창룡이 누구인가. 일제시대 관동군 헌병대 오장으로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투사들을 토벌하는데 앞장섰던 인물이다. 해방 후 육군 장교가 돼 `용공분자 색출'을 내세워 숙군작업에 나섰고, 애국투사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해 악명을 떨쳤다. 민족의 스승으로 역사의 재평가를 받는 백범 김구 선생을 암살한 배후로 지목되기도 한다. 남북이 갈라져 정치적으로 `반공'의 기치가 필요한 때이기는 했으나, 그의 독선과 횡포는 많은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했다. 이런 인물의 유해가 군사독재정권 시절도 아닌 민간정부에서 은밀히 국립묘지로 이장됐다는 것은 그만큼 역사의식이 흐려졌음을 반영한다. 당시 순직으로 처리됐기 때문에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고는 하나, 민족정기를 훼손하고 국민정서에 반하는 일이다. 국립묘지는 조국을 위해 산화한 애국열사들을 기리는 곳이다. 우리가 국립묘지를 경외하고 성스럽게 받드는 것은 순국영령들을 추모하기 때문이다. 김창룡처럼 역사에서 지탄받는 인물을 국립묘지에 안장함으로써 국립묘지에 대한 국민의 숭앙심이 떨어질까 걱정된다. 정부는 국립묘지 안장 기준과 절차를 엄격히 해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와 함께 생전의 계급에 따라 묘역이나 묘소 크기를 달리하는 등의 불합리한 규정도 고쳐야 할 것이다. 우리는 후손들이 역사를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고 올곧은 삶을 살도록 이끌어야 한다. 그것이 자손만대에 빛나는 조국을 바로 세우는 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 역사의 교훈을 제대로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한겨레 신문 사설에서 옮긴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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