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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기면 또 만들면 되죠 이게 세상사 입니다 : 18 일째

가을바람에 걸림이 없이( 퍼온 글 )

가을을 문턱에 둔 시기임에도 태양은 여전히 뜨겁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한 날씨가 찾아오지만, 낮에는 어김없이 강한 햇살이 대지와 사람들을 달군다. 그런 속에서도 계절의 변화는 이미 시작되고 있는 것 같다. 하늘은 조금씩 높아지고 거리에 다니는 사람들의 옷차림에서도 계절의 변화를 느낀다. 들판에서 일하는 농부의 손놀림이 더욱 빨라진 것 같고, 가을을 기다리는 과수나무의 과일들도 하나 둘씩 눈에 띈다. 돌이켜 보면 여름은 참으로 많은 것을 우리에게 안겨주었다. 게릴라성 장마와 홍수는 적지 않은 이재민을 만들어 냈다. 지난해에도 비슷한 재해를 당했는데, 금년에 역시 같은 종류의 재해를 당하는 사람이 나오는 것을 보면, 홍수로 인한 이재민 발생이 반드시 천재(天災)만은 아닌 것 같다. 폭우 때문에 안타깝게도 70여명의 귀중한 인명을 잃었다. 게다가 19명은 감전사(感電死)라는 그야말로 어이없는 죽음을 당하지 않았던가. 여름이 준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휴가가 있다. 도회지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대개 피서를 갔다 왔을 것이다. 생활에 활력을 주고, 긴장된 삶에 여유를 준다는 점에서 피서는 대단히 좋은 ‘생활의 청량제’라 할 수 있다. 문제는 버리고 온 쓰레기다. 떠내려온 쓰레기, 몰래 버린 쓰레기가 계곡과 호수, 유원지 심지어 해변에까지 쌓였다고 한다. ‘버려진 양심’을 치우는 데만 수백억원이 들지 않을까. 그럼에도 여름은 역시 위대했다고 생각한다. 부지런한 햇살은 논밭의 곡식을 토실토실하게 했고, 대지엔 풍요로움을 가져다 주었다. 보도에 의하면 수해에도 불구하고 올해도 풍년이라고 한다. 여름은 역시 지낼만한 계절이었던 것이다. 이제 바로 가을을 맞이한다. 여름에 닥쳤던 여러 문제는 계속 사람들을 괴롭힐지 모른다. 그럼에도 가을을 경건하게 맞을 필요가 있다. 선가(禪家)에 전해오는 책 가운데 ‘벽암록’이라는 어록(語錄)이 있다. 선방에서 수행ㆍ정진하는 스님들이라면 반드시 보는, ‘종문(宗門) 제일서’로 평가받는 책이다. 100가지 공안(수행자가 연구해야할 문제)을 담은 이 책 제27칙은 가을을 어떻게 맞으면 좋을 지를 잘 일러준다. 중국 오대(五代) 때 운문(雲門ㆍ864∼949)이란 스님이 계셨다. 선기(禪機)가 지극히 원숙했던 위대한 선승(禪僧)이자, 중국 운문종을 창시한 종장(宗匠)이다. 하루는 운문스님에게 한 스님이 찾아와 물었다. “나뭇잎이 시들어 떨어지면 어떻게 됩니까.” “나무는 앙상한 모습을 드러내고 천지에 가을 바람만 가득하지.” ‘체로금풍’(體露金風)이라는 유명한 화두가 바로 이 것이다. ‘체로’는 말 그대로 온전한 본 모습을 나타내는 것을 말하며, ‘금풍’은 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 다시 말해 “나무가 그대로 드러난 채 가을 바람을 맞고 있는 것, 가식 없는 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바로 ‘체로금풍’이다. 여름의 나무는 그 푸르름으로 만물을 압도한다. 무성하게 뒤덮인 푸른 잎사귀와 물기를 가득 머금은 줄기와 가지는 그 아름다움으로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기도 하는, 여름의 보배다. 그러나, 나무는 가을이 오면 잎을 떨구어 낸다. 최소한의 자양분만으로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함이다. 나무의 이런 현명함은, 갖은 군더더기로 삶을 부풀려 놓은 우리들에게 좋은 귀감이 된다. 가을을 맞는 나무처럼 가식을 벗어버린, 있는 모습 그대로 이번 가을을 살아보자. 사람의 육체나 마음 또한 하나의 나무에 다름 아니다. 가지와 잎이 많으면 쓸데없는 걱정과 번뇌가 생기기 쉽다. 반면 가식 없는 육체, 욕심을 여읜 마음은 사람을 한층 성숙하게 만든다. 가을에는, 지난 여름의 모든 즐거움·아픔을 넘어 금풍 앞에 ‘걸림이 없는’ 몸과 마음을 한번 가져보자. 지홍 조계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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