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내일기장으로 옮겨 도전한다 :
46 일째
고엽제
8.15 특집으로 베트남 전쟁이 남긴 상처.< 고 엽제 피해자들 >을 보여준다.고엽제........베트콩들이 밀림에 숨어서 전쟁을 하기 땜에,그들을 소탕하기 위한 밀림 고사 작전의 일환으로 뿌린 일종의 화학무기....미국이 베트남 전에서 처음 사용한 이 화학무기.초목을 고사 시키는 이 제초제는,2.4.5 T 계의 제초제로 미국은 이 전략을 오랜지 작전이라 하고 언론은이를 고엽작전이라 한단다.이 제초제를 합성할때 함유된 초 미량의 불순물이 다옥신으로인체에 침투되면 5-10 년뒤에 각종 암이나,신경계 마비를 이르키는무서운 화학무기란다.1994 년 베트남 정부가 밝힌 것에 의하면 이 화학무기로 인하여베트남 국민 200 만명이 이 고엽제의 휴유증으로 심한 아픔을 겪고있단다.이 공포의 무기.유엔서도,고엽제란 화학무기 사용을 베트남전쟁이후 금지시키고 이를 감시 한다고 한다.우리 한국민에게도 파월 용사를 중심으로 이 고엽제의 고통으로신음하고 있는 사람이 꽤 있나 보다.파월이후 이 병에 시달린 역전의 어느 용사.그는,월남에 가기전엔 건장한 젊은이 였단다.지금은 거의 침대서 누어있다 시피한 몸으로 힘든 투병생활을 하고 있단다.- 신경 마비로 입이 틀어진 사람들..- 심장악화로 일주일에 세번을 새로 피를 투석해야 살수있는 사람들.- 피부에 각종 악성 부스럼.- 몸이 시간이 갈수록 말라 비틀어져 서서히 죽어가는 사람들..국가의 관심은 별론가 보다.1965 년 10 월.첫 파월......그 이후 8 년간 이어진 파월 장병들.- 자유 통일위해서 ........하면서 이어진 노래들.내가 군대가고 한참 지나선 파월이 하나의 부러움으로 보였다.그땐,배경이 있어야만 파월을 할수 있었다.파월은 곧 돈을 벌러 간단 의식이 팽배했었으니....그럼 나도 어떤 운명에 처해 파월을 했다 하면 과연 고엽제서 자유로울수가 있었을가?나도 그때에 갔더라면?난 그 당시에 의지만 있었어도 갈순 있었다.돈에 대한 욕망이 부족했던지?전쟁터에 간단 사실이 맘에 내키지 않았는지 모르지만.......자신의 의지에 갔던,조국의 부름에 의해 갔던 그 사람들.이국땅에서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열심히 싸운 죄.그 댓가가 이런 고엽제라니...................??얼마나 황당하고 마음이 괴로울까?우리나라가 이 정도의 번영을 이룬 그 저변에는 파월용사의 피땀 의 댓가.그 피의 댓가로 미국은 우리에게 많은 차관을 해 주었고.결국은 이 돈으로 우린 근대화시대의 막을 열지 않았던가?우리 경제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던 베트남 전쟁.베트남민은 조국이 둘로 나눠 동족끼리 싸운 비극였지만,역설스럽게도 우린 오늘 날의 번영을 갖어온 원동력이 되었음을부인해선 안될거다.조국 근대화의 견인차.조국의 번영의 밑거름이 된 이 사람들.이 애국자들.보다 많은 관심과 편히 살수 있는 배려가 아쉽다.국가가 내 몰라라 하면 과연 이들이 갈수있는 곳이 어디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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