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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30일.
잔인한 4월임을 실감할수 있는 날이었다.
그날,
ㅁ 와 관악산 등산후에 이뤄진 참으로 한을 남길수 있는날
였다.
장수 막걸리 2병을 산에서 마셨고.....
하산후에,또 다시 마신 술이 그런화를 불러올줄이야..
<고향 보리밥>에서 동동주 한되.
그게 그런 끔찍한 화를 올줄이야 상상 못했지.
-왜 그날은 그렇게 뱃장을 부렸을까?
ㅁ 가 있는 탓이였을까?
객기였을까?
거기서 술을 마신것만 기억할뿐...
모든것은 기억을 잃었다.
술집에서 일어서자 마자 쓰러졌다는 ㅁ
즉시 119를 불러 서둘러 <샘 안양병원>으로 실려갔고 한동안은
응급실에서 기다려야 했다.
ㅁ 조차도 내 보호자전화를 몰라 내 핸폰에 저장된 전화번호로
여기저기 걸었단다.
뇌를 다쳐 실려온 상황에서 시간을 허비한단것은 곧 죽음을 뜻하는거라
각박했던 상황은 상상이 간다.
수원에 사는 형님과 동생 부부가 달려오고, 와이프도 엉겁결에 택시로 달려온 상황.
그때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당신의 남편이 지금 응급실에서 머리를 다쳐 심각합니다 빨이 오세요.
시각을 다퉈 c.t촬영을 했고, 그 기다림의 순간은 가족은 애가 타고도 남았단다.
그 기다림의 순간을 참지 못해 담당의사와 실랑이를 벌였다는 강 서방.
서울로 옮겨야 한단 지론이지만, 어떤 결론도 나지 않은 상황에서 이동과정에서 시간을 초과해
더 나쁜 상황으로 이어질수 있단 의사의 경고.
그런와중에서 판단은 와이프가 했단다.
가장 가까운 보호자신분으로...............
응급실에서 하루를 지새고, 담날은 중환자실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삶과 죽음의 고비가 되는 응급실.
그곳에서 희비가 교차되는 곳이기도 하다.
바로 비운을 맞음 영안실로 옮겨지는 것이니까.......
중한자 실의 3일간은 구토와 구역질, 어지럼증으로 견디기 어려운 시간들
였다.
다친 뇌가 정상적이지 못하단 증거겠지.
비보(?)고서 달려온 영란이와 세현.
나를 보자 마자 울면서 손을 잡던 딸 영란.
단 30분간의 면회시간동안 기도를 함께 해주던 목사님과 대동한 신자.
가평 <다일평화마을>에서 달려온 것.
오는 내내 차속에서 기도를 했다고 한다
건강이라면 믿었던 나라, 쓰러졌단 소식을 듣고선 이해가 되질 않았단애긴데...
-누가 건강을 자신을 갖고 있는가?
중환자실에서 머문 3일간.
그리고 m.r.i를 찍었다.
-부은 범위가 확대되질 않았고, 시티 ㅣ
찍은것 보담도 피가 덜 고인거 같습니다
고혈압약과 함께 복용하는 아스피린은 피를 멈추게 하질 않아서 걱정을 했는데
이건 기적같습니다.
친절한 <이 숭희 >의사의 애기.
그런 상황에서 누가 날 이렇게 지켜 줬을까?
지난 17일 퇴원했다.
병원 머문 18일간.
와이프와 딸 아들에겐 두말 필요없고, 주위 분들에게 너무도 걱정을 끼쳐 드린거 같다,
앞으로 갚아야 할 몫.
허지만,
꼭 위문왔어야 할 친구가 오지 않은건 너무도 서운했다.
-어떻게 친구가 쓰러져 생사를 넘나드는 순간을 알면서도 그렇게 침묵을 고수하고
있는가?
진정한 친구란 것은 이런 난관을 닦쳤을때 비로소 드러난거 같다.
<택><재> <창>이 이렇게 서운함을 줬다.
-내가 과연 그들이 그런 상황였을때 그렇게 모른척할수 있었을까?
아니었을거 같은데........................
잊지 않기로 했다.
가슴에 새기면서............
날 위해 매일 오디시피한 동생 부부와 처남 내외.
형님의 전화는 잊을수 없다.
감회가 새롭다,
다시금 이런 일기를 쓸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것을
우연으로 보질 않는다.
나락으로 떠러진 날 붙잡은 그 손.
그 손을 잊지 않고 나갈거다.
진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