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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모습은 예전 그대로지만, 옛사람들은 다 어디로 간걸까.
그 집에 들어서면 반가운 얼굴을 만날거 같다.
장자동, 엄동, 고랑내, 월평, 첸밴으로 불리운 동네.
한 마을이지만 자연스레 불리운 이름이라 그렇게들 부른 모양이다.
면사무소에 등록된 이름은 월평.
구릉진 야산아래 모여있는 마을.
그리고 앞벌은 너른 평야여서 보통의 시골동네와 다름없다.
그렇게도 웅장하게 보였던 금성산은 오늘도 여전한 위용을 보여주지만
그런 웅장함은 아닌거 같다.
-아주 옛날에 무등산에서 뛰어난 장수가 금성산을 향해 뛰었다가 칡 넝쿨에 걸려
죽었단 애기가 있더라.
어머니가 들려줬던 전설이지만, 아무리 전설이라도 믿음이 가질 않았던 애기.
저수지 아래 살았던 춘식이 집.
여름이면 동네 사람들이 모여 윷판을 펼치고 왁자지껄 떠들던 집.
저수지 낙시하러 온 손님들이 으레껏 들러 막걸리 거나하게 마시던 그 집이지만
이젠 고요한 집에서 춘식이 어머니가 추억을 간직하고 그대로 산다
91세라고 해도 정정한걸 보니 살긴 좋은곳인가 보다.
약방댁으로 유명했던 진남이 어머니.
83세의 고령에도 정정한건 약효가 나타난건지도 모르지.
늘 한약냄새가 코에 스치든 약방댁.
동네 환자들은 모두 약방댁에서 처방해서 먹었던 시절.
그리고 큰 아버지 댁.
유일한 아들이 6.25때 순경으로 재직하다 인민군으로 끌려가 공개총살당한 바람에 늘 가슴에
한을 품으며 사셨던 큰 댁.
우리가 부러웠을까?
저수지로 미역이라도 감으려 가면 늘 엉덩이를 철썩 때리며 귀여워 해 주셨던 분들.
넓은 집과 터는 이젠 남의 밭으로 변해 무심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책을 끼고 고샅을 나오는 창수의 환상을 그려본다.
일찌기 누나들이 서울로 시집간 덕분에 자주 서울왕래를 하였던 창수.
-모래내 애기며, 명수대 애기며...
서울애기에 상상으로 들었던 창수애기.
연애편지를 마치 인쇄체 처럼 잘도 써 혀를 내둘렀던 창수.
두번의 결혼실패로 한강에 투신해 고인이 된지 오랜 창수.
그가 늘 그립다.
시를 알고 문학을 논했던 그.
아마 지금쯤 생존해 있었다면 시인이라도 되었을텐데....
맨몸으로 부자인 봉순이와 결혼하여 자신의 힘으로 떵떵거림서 살겠다고 부지런히
일을 하여 오늘의 부를 창조했지만.....
갑작스럽게 찾아온 병마,휠체어에 의지해 살수밖에 없는 그였지만...
몸에 욕창까지 번져 더 이상 살수 있을지 의문이란 봉순씨의 애기를 들었다.
젊은 시절에 몸을 너무 혹사시킨게 원인은 아닌지....
여우고삐 아랫집.
여장부였던 사촌형수.
자식들 다 출가시키고 혼자서 살면서 편하게 산다더니 그집을 어떻게 두고 가셨을까?
점점퇴락해가는 그 집을 보노라니 형수생각이 난다.
-우편배달부라고 놀리셨던 형수.
아버지의 일본선물인 가방이 마치 우편배달부의 거처럼 생긴것에서 비롯된것.
그 가방은 베낭처럼 맨게 아니라 비스듬이 맨것에서 그렇게 불렀던거 같다.
그땐 눌리던 형수가 왜 그리도 미웠을까.
그런 기억조차도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