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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득권 죽어야 모두산다( 옮긴글 )

〈유시춘·소설가〉종교의 본질과 기능은 아무래도 ‘개인의 구원’에 있다. 현실의 거대한 부조리와 비리에 상처입고 신음하는 인간에게 신앙 이외의 그 어떤 것이 위안과 기쁨을 줄 수 있겠는가.식민지·분단·전쟁·가난·독재 등 전후의 제3세계 민중들이 함께 겪은 신산과 파란이 우리들에겐 유독 혹독했던 것인가. 지치고 병든 영혼들은 열렬히 안식을 구했다. 그리하여 지금 한국의 기독교 교세 확장은 세계의 유수한 기독교 문명 국가의 연구대상이 될 만큼 경이롭다.기독교가 개화기 선교기간에 한국의 교육·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는 매우 크다. 국가가 미처 관리하지 못하는 빈민과 불우한 이웃에 대한 봉사의 손길 또한 소리없는 가운데 수행했다. 그러나 문제는 근대화와 함께 교회가 가진 재화의 규모가 엄청나게 팽창하면서부터 일어났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보다는 호화로운 성전에의 경쟁과 개별 교회의 이기주의가 만연했다.엊그제 한국천주교회 주교회의는 천주교의 어제와 오늘의 모습을 반성하고 복음정신으로 새롭게 태어날 것을 고백하는 ‘쇄신과 화해’를 발표했다. 신선한 충격이며, 이 참담하고 황망한 오늘의 현실에 여러가지를 진지하게 성찰하게 하는 촉매가 되었다.필자는 1980년대 군사정권 하에서 한국천주교가 보여준 용기와 헌신이야말로 모든 종교인들의 귀감이라고 믿고 있다. 나치에 저항하다 비극적 생애를 마감한 독일 신학자 본 회퍼가 제기한 문제는 기독교인이라면 한번쯤 깊이 고뇌해야 할 주제가 아닌가. ‘미친 사람이 자동차의 운전대를 잡고 마음대로 달리고 있다. 사람들이 마구 죽어 넘어진다. 이때 목사나 신부가 해야할 일이 다만 죽고 다친 자들을 위해 장례를 치르고 기도를 해주는 것에 머물러야 할 것인가. 나아가 미친 자로부터 핸들을 빼앗는 일에 동참하는 것인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1987년 박종철군의 고문살해 수사가 은폐조작된 사실을 사제의 이름으로 용감하게 밝혀 6월 민주항쟁의 불길을 지폈다. 국민들은 부도덕한 정권을 향해 분노하며 일어섰다. 아무도 사제들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이런 천주교가 일제시대에 정교분리를 고수하면서 결과적으로 안중근 의거 등 민족독립운동을 탄압하는 결과를 낳은 것을 비롯, 해방후 혼란기에 분단의 극복과 화해를 위해 노력하지 못한 점과 지역·계층·세대간의 갈등 및 소외된 자의 인권과 복지에 소홀했던 점 등을 조목조목 반성하고 있다. 단순히 반성과 참회의 고백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결의와 실천에의 약속을 하고 있어 필자 같은 무종교인에게도 감동을 준다.대학생 3명 중 1명꼴로 휴학중이라는 우울한 뉴스를 배경으로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 같은 낙엽이 이 계절의 마지막 건조한 마찰음을 일으키며 실직자와 또 실직에의 두려움에 떠는 이들의 빈가슴을 을씨년스럽게 하는 이즈음, 우리 모두 겸허하게 돌아보았으면 한다.이 고통이 오로지 정권교체에 대한 기대를 말끔히 배반해 버린 정부 탓인가. 격렬시위를 하는 빚더미 농민들, 한사코 반기를 드는 노동자들, 실직공포에 엎드린 구조조정 대상자들이 실은 모두가 한 배를 타고 있는 우리들은 다민족 연방제 나라가 아닌 너무나 끈끈한 공동체이다. 특히 20대 80의 사회로 가는 징후가 너무도 불길하게 뚜렷한 이때, 가진 자들이야말로 민족구성원으로서의 최소한의 양식을 회복할 때라 본다.민주당 최고위원들은 대통령께 흉흉한 민심을 여과없이 전달했다고 한다. 이구동성은 오직 하나, ‘변해야 산다’는 것이다. 옳은 판단이다.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천주교의 참회로부터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자화자찬과 ‘너무 일찍 터뜨린 샴페인’일랑 걷어 치우고 국민의 마음에 다가가지 못한 여러 잘못을 뉘우치고 작은 기득권이라도 용감히 버리는 일이다. 지금은 바로 ‘죽어야 사는’ 엄중한 때이다.* 경향 신문의 칼럼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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