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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본드
2000년 서울 겨울 (옮긴 글)

2000년 서울 겨울. IMF의 악몽이 다시 가난한 사람들을 특히 힘들게 하고 있다. 거리를 배회하는 실업자가 늘어나고 있고 차가운 지하도와 쪽방에서 새우잠을 자는 빈민도 급증하고 있다. 고아원과 양로원에는 지원금이 줄면서 “이 추운 겨울을 어떻게 나야할지 걱정”이라는 한숨이 새어나오고 있다. 떠오르는 한국의 심볼로 거론되던 서울 강남구 테헤란 밸리도 거품이 빠지면서 열기가 식었다. 주가가 절반으로 떨어지면서 여의도 증권가도 침울하다. 시세판을 바라보는 투자자들은 맥풀린 모습이고 펀드매니저들은 할 말을 잃었다. 2000년 겨울, 서울은 이렇게 썰렁하다. 새 천년이 왔다고 감격하던 모습은 간데 없다. 다가온 동장군과 함께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물론 지난 여름 까지만해도 2000년이 그렇게 우울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역사적인 6.15선언을 볼 수 있었고, 감격의 이산가족 상봉도 이뤄졌다. 곧 통일이 이뤄지는 것이 아닌가 착각하게 할 정도였다. 테헤란밸리와 여의도의 찬바람 그러나 문제는 경제였다. 주가는 폭락했고 현대건설의 유동성이 문제되면서 한국 최대재벌로 알려졌던 현대가 대우처럼 침몰하는 것이 아니냐는 소문도 나돌았다. 정말 한국경제는 2000년 가을과 겨울에 우리를 참담하게 했다. 물론 정치도 우리를 짜증나게했다. 자민련을 교섭단체로 만들려 날치기를 하더니만 검찰총장 탄핵안을 폐기시키기 위해 여당이 국회의장을 감금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집단이기주의에 사회기강은 해이해졌고 정부는 잇단 금융스캔들로 휘청거린다. 정치불안과 경제의 어려움 등으로 민심은 되돌리기 힘들 정도로 돌아서 있다. `2000년 한국호'는 이렇게 위기에 빠져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태풍권에서 벗어나 순항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물이 절반 들어있는 컵을 보고 물이 반밖에 남지 않았다고 낙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반이나 남았다고 희망적으로 말할 수도 있다. 우리 사회가 그렇지 않은가. 우선 김대중 대통령이 내일 노르웨이에서 노벨평화상을 받는다. 현직 대통령이 기라성 같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노벨평화상을 받는 것은 국가적인 경사이다. 여야 지역 계층 노소 가릴 것없이 가슴속 깊히 축하해야할 일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우리 주위에는 기쁜 일, 축하할 일이 많다. 정치 불신의 와중에서도 묵묵히 유권자들을 위해 봉사하는 정치인도 상당수 있다. 대다수의 공무원과 교사는 지역사회와 학생들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또 경제계에는 김우중과 진승현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기술개발에 열심인 벤처인들이 오늘도 테헤란밸리 등의 밤을 밝히고 있다. 무엇보다 묵묵히 자기 일에 열심인 대다수의 보통사람들이 우리 옆에 있지 않은가. 평생 모은 재산인 5천만원을 고아를 위해 쾌척한 `위안부할머니'도 우리 이웃이고, 백혈병에 걸린 아들을 구하려 자신을 희생하는 `가시고기'의 아버지도 우리 주위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마음을 열고 나눔을 생각하자 이제 올해도 20여일밖에 남지 않았다. 올해를 정리하면서 못다한 일을 마무리해야할 때이다. 한 해를 정리하는 시점에 우선 마음을 나누는 시간을 갖는 것은 어떤가. 스스로 마음을 비우고 가족과 이웃을 생각하는 여유를 가져보는 것이다. 그동안 잊었던 이웃과 친구 특히 불우한 친지와 이웃들을 찾아 대화하고 편지를 쓰는 것이다. 이 어려운 시기, 서로 이해하고 격려하면서 이겨나갈 수 있지 않을까. 마음의 여유를 찾은 뒤 우리는 `나눔'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불우이웃은 지금 사회의 따뜻한 온정을 기대하고 있다. 어렵고 힘든 때일수록 서로 나누는 지혜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사랑을 나누면 모두 행복해질 수 있다. 이제 3주일이 지나면 진짜 새 천년인 2001년이 온다. 세상이 힘들다고 좌절하고 남의 탓만 해서야 되겠는가. 겸손하게 2000년 한 해를 반성하는 한편 마음을 열고 나눔을 실천하면서 `새 천년'을 맞이하자. 2000년 겨울은 썰렁하고 추웠지만 2001년 겨울은 우리 모두 포근하고 따뜻하게 맞을 준비를 하자. 정세용/논설위원 * 한 겨레신문의 칼럼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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