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기면 또 만들면 되죠 이게 세상사 입니다 :
14 일째
‘효자 병신’씁쓸한 유행어
〈이남호·고려대 교수〉연말이 되어 오래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이 몇명 모였다. 저녁을 먹고 나니 후식으로 딸기가 나왔다. 겨울에 웬 딸기가 다 있느냐고 했더니 요즘은 재배기술이 발달하여 철이 따로 없다고 한 친구가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또 다른 친구가 옛날에도 겨울에 딸기가 있었다고, 병든 어머니가 먹고 싶다고 한 딸기를 눈 속에서 구해드린 이야기도 있지 않느냐고 농담을 했다. 그랬더니 그 친구의 부인이 “아, 효병이 이야기 말씀하시는군요”라고 했다. 효병이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효자 병신이란 말도 듣지 못했느냐고 웃으면서 말했다. 어머니에게 딸기를 구해드리기 위해서 한겨울의 눈 덮힌 산 속을 헤매고 다닌다는 것은 병신같은 짓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점에서 효병이라는 말은 아주 적절한 것 같다.‘삼강오륜도’ 같은, 조선시대의 수신책을 보면 효자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그런데 그 효자들은 거의가 효병이라고 불러야 마땅할 인물들이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귤이 바람에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밤새 귤나무를 부둥켜 안고 울었다는 이야기, 병든 어머니의 몸보신을 위해서 자기 허벅지 살을 베어 음식을 만들어드렸다는 가난한 아들 이야기, 돌아가신 아버님의 무덤 옆에 초막을 짓고 몇년 동안 울고만 있었다는 이야기, 부모님 무덤가에 소나무를 심었는데 들짐승들이 와서 그 소나무 뿌리를 헤치자 밤낮으로 그 소나무 곁에서 울며 지키니 나중에 호랑이가 감동하여 대신 지켜주었다는 이야기들이 그러하다. 심지어는 자식을 죽여서 부모를 공양한 효자 이야기도 있다. 이런 이야기들을 보면 효는 절대적 가치로 생각되었고, 맹목적으로 추구된 가치였던 것 같다.그러나 사회가 변화하면서 효의 가치는 크게 약화된 것 같다. 오늘날 ‘삼강오륜도’ 속의 비합리적인 효자이야기들은 우스갯소리 정도로 생각된다. 효의 가치가 약화된 것은 우선 대가족 제도에서 핵가족 제도로의 사회적 변화 때문일 것이다. 핵가족 사회에서는, 일단 성인이 되면 부모와의 관계가 다소 느슨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최근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가족이라는 테두리를 별로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경향까지 있다. 가족이라는 테두리가 약화되면 효라는 이념은 발 붙일 곳이 없게 된다.한편 효라는 것은 나이든 사람들에 대한 공경심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사회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노인에 대한 공경심은 노인의 오랜 지혜를 많이 필요로 하는 사회일수록 강하다. 즉, 농경사회와 같이 노인들의 오랜 지혜가 그 사회의 생존과 경영에 아주 중요한 곳에서 노인에 대한 공경심이나 효 이념이 발달한다는 것이다. 항상 많은 변화와 새로운 도전 속에서 살아가는 유목민들에게는 그런 것이 한층 약하다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오늘날의 세상은 노인이 무시당할 수밖에 없다. 하루가 다르게 세상의 모든 것들이 변화하기 때문에 노인들의 오랜 지혜는 별로 쓸모가 없어지고, 오히려 젊은이들에게 노인들이 배워야 할 것이 많이 생긴다. 인터넷이 그렇고, 컴퓨터가 그렇고, 대중문화가 그렇다. 점점 더 젊은이가 중심이 되는 세상이 되어가는 것이다. 이런 세상에서 노인들에 대한 공경심이나 효가 무시당하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그러나 효병이라는 말의 유행은 씁쓸하다. 부모를 잘 모시는 사람이 병신으로 취급받는다는 것은 지나치다. 자기 이익을 좀 양보하면서 부모에게 정성을 보이는 것이 병신짓일 수는 없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맹목적인 자식 사랑에 빠져있는 자병이들이 더 문제이다. 효병이는 좋은 결과를 낳았으면 낳았지 나쁜 결과를 낳지는 않는다. 그러나 자병이들은 자기 자식을 망치고 나아가 사회에도 나쁜 영향을 끼친다. 효병이를 놀리기 이전에 자병이를 경계해야 할 것 같다 - 경향신문 칼럼에서 옮긴 글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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