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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 자살 (옮긴 글 )

인터넷 시대에 걸맞게 자살 양상도 첨단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기껏해야 ‘자살방조’ 등의 단어로도 세상이 떠들썩했으나 이제는 ‘자살사이트’니 ‘청부자살’이니 ‘촉탁살인’ 등의 더욱 생소한 말이 출현했습니다. 젊은층들이 한번쯤 ‘죽음에 이르는 병’을 앓는 것은 동서를 막론하고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인터넷을 통한 새롭고 강력한 자살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있는 셈입니다. 자살은 동서 어디서나 ‘범죄’행위로 받아들여집니다. 영어에서도 자살(suiside) 앞에는 ‘저지른다’(commite)라는 동사가 옵니다. 여기에다 ‘청부’라는 섬뜩한 범죄용어까지 겹치면 그 죄는 실로 무거울 수밖에 없습니다. 경찰이 자살사이트에 대한 본격수사에 착수하고 촉탁살인 혐의자를 구속시키는 등 법석을 떠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요. ‘쓸쓸하여도 오늘은 죽지 말자. 앞으로 살아야 할 많은 날들은 지금껏 살았던 날들에 대한 말없는 찬사이므로’라고 한 시인은 노래했지만, 지구상에는 하루에도 1천명이 스스로 ‘생의 찬사’를 배반하고 있습니다. “죽을 용기를 갖고 열심히 살면 무엇을 못하겠느냐”는 안타까움도 이런 생의 단절 앞에는 부질없는 것이 되기 십상입니다. 자살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를 때마다 단골메뉴처럼 거론되는 것은 자살과 사회환경의 연관성 문제입니다. 자살이라는 질병이 개인의 정신병리적 차원이 아니라 사회환경적 소산이라는 이야기지요. 특히 지난 구제금융시대에 불황과 실업이 사람들을 절망의 벼랑 끝으로 내몰면서 빚어진 자살행렬 속에서, 우리는 자살 문제에 대한 사회적 대책의 필요성을 끔찍하게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요즘 가뜩이나 경제악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불거져나온 자살사이트 문제는 많은 우려와 경각심을 불러일으킵니다. 사이트 폐쇄나 수사 등 미봉책 정도로만 그칠 것이 아니라 ‘내일에 대한 희망’을 주기 위한 사회적 노력이 절실하다는 지적도 설득력있게 다가옵니다. 이런 ‘모범답안’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한편으로 이번 자살 문제를 접하면서 문득 떠오르는 것은 ‘정신적 자살’이라는 단어였습니다. 육신을 죽이는 자살이야 피해야 마땅한 것이지만, 우리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욕망, 아집, 탐욕, 독선 등을 죽이는 정신적 자살은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보편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정신수행법은 아니지만 명상을 통해 스스로를 끊임없이 죽이는 수행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고요히 명상을 하면서 자신이 죽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높은 절벽에서 스스로 떨어지는 모습을 상상하기도 하고, 달리는 지하철에 육신을 던져보기도 합니다. 조금은 끔찍한 정신수련법이지요. 그런 수행방식이 과연 좋은 것인지는 자신있게 말할 수 없지만 어쨌든 자신의 끊임없는 욕망과 세상살이의 번뇌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를 깨닫는 한 방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명상 속의 죽음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는 방편이라는 이야기지요. 자살이 사회병리에서 기인하는 현상이라는 의견을 받아들인다면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온갖 탐욕과 아집은 바로 다른 사람들의 자살을 부추기는 병균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깃들어 있는 병균들이 모여 결국 사회적 병리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가끔 한번씩은 정신적 자살을 감행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한겨레21 편집장 김종구- 한겨레 신문 칼럼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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