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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재편집`

편집을 하노라면 많은 기사를 읽는다. 기사에 담긴 사연을 모두 기억한다면 아마 머리가 뻐개질 것이다. 그러나 아직 편집자로 살아있음은 기억메커니즘이 다르다는 증거가 되지는 않을까. 보통, 단일사건은 짧게, 맥락을 가진 것은 길게 저장된다. 맥락이란, 사안의 계속성, 실생활과 연관성일 터. 그러나 짧고긺의 차이가 있을지 언정 계속성과 연관성이 없는 게 없다. 해서, 편집자는 망각을 생존무기로 한다. 한해를 돌아보아, 편집자의 머리 한 귀퉁이에 남은 것이 없을 수 없다. 그것은, 자체 시간대를 건너 상호 비교와 대조의 영역에 들어있거나, 개인수첩에 해당할 은밀한 부위에 저장된 축에 속한다. 그 머리에 이충연 일경이 놓여 있다. 나이 스물에 유행성 출혈열로 사망한 전경이다. '미군사격장 떠나라'는 함성이 컸던 매향리에서, 6개월이상 그 반대진영에 섰던 것. 그러다 한국전에서 비롯한 출혈열에 감염돼, 그냥 감기인 줄 알고 젊은 몸이 식어갔다. 그 옆에, 몸을 살라 뜨겁게 죽어간 김길동씨가 있다. 경북 상주의 한 탄광 노동자인 김씨. 국고보조금이 사주의 이익을 위해 쓰이고 있음에 항의하여, 남은 동료만이라도 정상적인 임금과 복지혜택을 받기 바라며 분신했던 것. 장재언? 그를 이름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2차 이산가족 상호방문때 방남단 대표단장이었다면 '아하!' 할 것이다. 당시 장충식 한적 총재를 일본으로 밀어내며 당당히 서울에 입성했었던 인물. 피신한 장 총재를 두고 '그 몰골이야말로 가련하다'고 말했다. 남쪽의 장씨는 결국 총재직을 떠났다. 그것이 사직이유가 아니라는 모양새를 만들면서 말이다. 한 월간지와 가진 인터뷰 발언이 씨가 돼 벌어진 남북간 해프닝. 다음, 사흘이라는 짧은 재직임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것으로 인해 강한 인상을 남긴 박금성 전 서울경찰청장. 고교와 대학학력을 허위기재 하였다는 것이 물러난 빌미. 한 일간지 만평의 실수(?)에서 비롯되어 패거리인사라는 눈총과 함께 민주당 동교동계의 2선퇴진을 불렀다. 청와대 초소근무 중 총기사고로 사망한 김정진 순경. 박씨가 101경비단장으로 근무할 당시 횡사하여 거의 잊혀졌다가 한통의 투서로 말미암아 세인의 입에 살아나, 박씨의 낙마를 거들었다. 김영삼씨가 구태여 기억 한자락에 남음은 대통령을 지낸 분으로서의 체신없음과 현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상을 받은 것과 관련한 기행에 기인한다. 노르웨이 오슬로에 뭇시선이 머물고 있을 때, 그는 고려대 앞 자신의 차안에서 깡통소변을 보면서 12시간 이상을 머물고 있었다. 학생들은 막고 그는 학교로 들어가야겠다고 버티고…. 오후 6시 수상자 결정 발표가 전해지자, 노벨상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고 개탄하기도 했다. 정계의 도반이자 경쟁자로, 호남과 영남의 대표적인 인물로 수십년을 지내온 두 김씨. 노벨상을 사이에 둔 기이한 만남이었다. 정계보다 스캔달이 많은 연예계. 섹스비디오의 주인공 백지영씨도 각인된 편. 철없는 그의 행위와 네티즌의 훔쳐보기가 어우러져 동영상 파일이 풍미했던 셈이다. 가수로서의 공인과 보호되어야 할 사생활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백씨의 노출이 자기 뜻에 반했던 것과 대조적으로 홍석천씨의 커밍아웃은 고백이었다. “그게 나니까. 거짓말할 수 없으니까. 그리고 잘못한 것 없으니까. 단지 그 뿐이고 그게 전부다.” 홍씨의 말. 소수에 속한다는 것으로 인해, `변태'라는 편견에 묻혀버렸던 사안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반민주 전력의 중진을 포함해 낙천 대상자의 70%를 떨어지게 만든 총선시민연대. 댓가도, 이름도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참여하여 위대한 선거혁명을 일궈 냈다. 이들의 공익적인 지향과 대조되는 집단이 의쟁투. 4월부터 11월까지 거의 매일 지면을 메웠다. 의약분업 보완을 이유로 다섯 차례의 폐업·파업을 주도했다. 환자를 볼모로 집단의 이익을 위해 힘으로 밀어붙인 사례로 남았다. 의료제도의 문제점을 의제화하고, 동시에 `의사란 무엇인가'를 일깨워 주었다. 이밖에, 북으로 떠나간 비전향장기수 신인영씨의 꼬장꼬장한 모습과, 아들을 보듬고 어쩔줄 몰라했던, 어머니 고희봉씨의 고치처럼 늙은 모습이 겹쳐져 있다. 그린스펀과 이헌재씨, 부시 미 대통령 당선자와 총격으로 숨져간 열네살 팔레스타인 소년도 이런저런 이유로 기억의 이웃에 있다. 임종업[email protected] - 한겨레 신문 칼럼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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