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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본드
끊기면 또 만들면 되죠 이게 세상사 입니다 : 14 일째

어머님..

이제 다사 다난한 한해도 오늘이 마지막인것 같습니다...오늘도 춥다 합니다...돌이켜 보면 2000년도에는 어머님 주위에 기쁨보다는 슬픔들로 가득찬 한해였나 봅니다...

자주 뵙지는 못해도 그래도 오가는 사람편에 소식을 알고 그래도 마음으로 나마 위로가 되어서 든든한 지주가 되어 주었던 고모님의 별세....슬픈 일이지요...우리 의성가문의 어머님 대의 마지막 촛불같이 비쳐주시던 그 고모님...그래서 가끔 만나면 당신들은 지나간 오래된 애기를 바로 엊그제 일처럼 생생히 기억하심서 파안대소 하신거지요.시누이 올케 사이인 당신들은 어쩌면 그렇게도 친 자매같이도 정답게 사셨는지요?

그 서릿발 날린다는 그런 사이가...그렇게 고모님이 어머님을 좋아하신 것은 어머님 보다는 아버님을 지극으로 사랑해주신 당신을 더 좋아했는지 모릅니다..그 고모님의 대상은 어쩌면 아버지 였을 겁니다.....당신이 보이신 아버님에 대한 정성과 그 사랑이 고모님에게는 좋은 인상으로 보이신 것이지요.......

어머님.....기억 나시지요.....아버지의 그 생전에 고모님에 대한 지극한 배려와 사랑.....우리들이 그 저수지에서 건져 올린 새우만 보아도 늘 고모님을 먼저 생각했던 아버지....바로 한 동네에 그렇게 큰 아버지 들이 살고 있었어도 당신은 그렇게 늘 고모님을생각했었지요...우리동네서 그 계리가 어디 지척이던가요?전 어려서도 .....그 물고기 대바구니를 들고 고모님댁에 가는 것이 싫었어요.....


그러나 늘 그 심부름은 제가 적성이라고 판단 하셨는지는 몰라도 제 차지가 되곤했어요....가기만 하면야 고모님이 제 용돈 챙겨주시고 때론 옷도 사주시곤 하시지만 왠지 그고모댁에 간단것이 그렇게 힘들었는지 .....아니 그것이 아니었지요..남자가 ...그당시에도 그런 마음은 있었겠지요...그 바구니 들고 그 계리의 동네을 갈려면 많은 친구들을 만났어요..그 학교같은 반의 애들이 그렇게 부끄럽게 생각이 되었지요...


어머님....그 가기 싫어도 어디 안간다고 했었나요?아버지의 한번의 명령은 바로 제겐 법이었지요...그렇게 아버지의 존재는 바로 하늘같이 어렵고 무섭고 또 신성불가침한 존재였어요그런게 당신과의 긴 세월동안이나 가깝고 친근하게 지내온 사이였는데....

그래서 지난 여름휴가시에 당신이 갔다오라고 채근되시었나 봅니다그 마지막 본 고모님의 모습....비록 작은 체구로 마른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그렇게 기억이 생생해서 오래동안이나당신옆에 머물줄 알았는데....?어떻게 당신과의 인연을 끊고서 가신 것일가요...

그런 허전한 주위와 마음이 당신을 허약하게 만든것은 아닌지요..그리고 어머님....이모님의 입원도 당신의 마음을 더욱이나 외롭고 쓸쓸하게 한것이 아닌가요..왜 그렇게 2000 년도에는 불행하고 우울한 애기들만 들렸던 지요...그저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이 짓누릅니다...

어머님.....밖에 자유롭게 돌아다니시지 못한것도 답답하지요....그래도 날씨가 이렇게 추운 겨울이어서 다행입니다 여름이라고 상상하면 어쩝니까그 더위속에서 누어만 계셔야 하는 답답함을...
희순이의 지극한 정성으로 그 정도의 쾌유가 된것이 아닙니까...동생에게는 정말로 오빠로써 면목이 없습니다...훌쩍 한번 들여다 보고 온 우리들....직장에 다녀야 한단 그럴듯한 명분으로 한번 갔다오고서...모든것을 동생에게만 일임하고 있어 동생에게 빛을 지고 있는 기분입니다...

어머님....이런 겨울 날에 당신이 만드신 그 쉬원한 식혜....장독대 위에 밤 새워 담가둔 그 얼음이 둥둥뜬 식혜맛을 잊을수 없습니다..그 정갈하고 맛을 내시는 그 독특한 솜씨로 해 주시던 그 식혜의 맛......이러한 겨울에 자주 생각이 난답니다..언젠가 식혜를 만들수 있는 재료를 주심서 어떻게 하라고 신신당부했던 그 식혜여기서 한 식혜맛은 그런 맛이 아니었습니다...

어머님......그 험난했던 2000 년이 오늘로 마감인가 봅니다..어서 보내 버리고 새로운 새해엔 어서 쾌유하여 건강을 찾았음 좋겠습니다 ....그럴겁니다 동생의 지극한 정성으로 아마도 빠른 시간에 쾌유될것을 믿습니다...어머님....영란이의 대학지원으로 요새 며칠이나 힘들었습니다 .

그래서 며칠이나 안부 전하지도 못하고 그랬습니다...우리가 어렸을땐 대학은 그저 동네서 두서 명이 가야하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요즘은 대학을 나오지 못하면 인간 대접도 못받는 시대라서 안 갈수가 없답니다...그래서 여기 저기 원서를 접수하고 이젠 발표날만 기다립니다...

그렇게 믿었던 영란이가 실력이 신통찮아서 서울에 있은 학교는 상상도 못하고 잘해야 경기도나 합격이 되어서 다닐런지 모릅니다.....영란인....이제사 그 것을 후회하는것 같습니다 .원수 접수하려고 하니 이건 정말로 막막하지요...어디 갈데가 없는 겁니다...

여기 저기 학교는 많아도 영란이가 문을 열기엔 모두가 어려운 곳 뿐인겁니다....그래서 ....그 아품속에 많이 성장하고 어른 스러워 졌습니다...어젠 마지막 원서 접수하러 정릉에 갔었습니다....그 정릉....영란이가 낳아서 한달동안이나 몸 조리할때 있었던 그 정릉의 처남댁....그 처남댁이 살았던 그 집들이 다 헐어서 아파트로 변해서 달라졌더 군요....영란이에게 지나면서 그 애기를 해 주었지요...그러니까 18 년전에 여기에서 떠난 후에 대학을 가겠다고 오는 길이 된셈이지요..어머님.....용서 하십시요....그간 이런 사유로 전화도 못하고 가서 영란이 엄마가 뵙지도 못하고 그런 겁니다..

이젠 모든 것이 마무리 되고 발표날만 남아 있어서 영란이도 세현이도 같이서 가서 뵙고 올겁니다....세현이 녀석은 여전히 철딱서니 없어서 마음이 상할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언제나 어른 스러워 질런지....?어머님.....어젠 영란이와 원서 접수하고 오면서 여러가질 생각했습니다...벌써 우리 영란이가 이렇게 대학을 간다고 그런 지경에 이르렀다 하니 참 세월이 살같단 생각이 들고요....

화곡동 살때에 그렇게 노래를 잘 부르던 영란이....어머님이 잠간 와서 계실때에 앙징 스럽게 익살을 부리던 영란이........그렇게도 명랑하고 사삭대던 애가 요즘은 말이 없습니다.....그렇게 촐랑대던 그런 마음들은 이렇게 변하고 마는 지요..


참 그렇고 그 주현이 녀석은 역시 답답한 놈입니다..수능보고서 전화한번 딱 오고 오리 무중입니다 어디를 갔는지 .....특차에 합격을 했는지 궁금해도 알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어쩌면 그렇게도 무심한 놈인지 .....화가 나기도 합니다...

그래도 재수한 놈이라 대학에 대한 것은 영란이 보담은 나을텐데도 일절의 전화도 없습니다.......예상보다도 못한것은 아닌지 모릅니다.....- 작년보담은 올랐다고 .....그러나 당연한 일이지요.... 

그 성적이 오른다 해도 다들 올라서 경쟁력이 없어서 어지간히 오르지 않고선 작년의 수준을 따를수 없는것인데요.....아마도 .....녀석은 그 재수를 후회한지도 모르겠습니다.........어머님.....날씨가 쌀쌀해졌습니다.....아직도 이모님이 병실에 계시다고요?그러나 어찌 합니까..것도 당신의 운인데....

그 천사같은 이모님이 왜 그렇게 불행하게 지내야 하는지 가슴이 아픔니다..그런 좋은 분이 행복하게 사셔야 하는데....어머님....하루하루가 답답해도 늘 그날을 생각하십시요...그 따뜻한 해가 비치는 그 봄엔 아마도 당신은 건강을 찾을 겁니다...그래서 파란 싹들이 자라나는 목골에도 가시고 터밭에도 채소를 심으셔 야죠...올해는 그 깨를 심지 마십시요 그 작업이 얼마나 힘든 작업입니까...제발 이젠 편안히 사십시요...여기 저기 다니심서 자연과 벗삼고 가까운 친구분들과 지나간 애기도 함서 사십시요당신이 하신 일들은 건강을 위한 운동으로 하시고...그래서 하루 하루가 건강을 되찾아 호전되기를 빕니다 ...어머님....2001 년엔 더욱 좋은날들이 전개되길 빌고 건강을 하루속이찾길 빕니다.
둘째가  멀리  신월동에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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