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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본드
아들을 위하여 ( 옮긴 글 )

유신독재의 불길한 전조를 알리는 국가비상사태와 위수령이 선포될 무렵에 당시의 학생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단편소설 를 쓴 것이 거의 30년 전의 일이니 한 세대가 흘러간 셈이로구나. 너희들은 그 무렵에 태어나지도 않았지. 얼마 전 한 시인은 자기 아들이 대학생이 됐노라고 한숨 섞어 전화했더구나. 그 자신도 학생 때 긴급조치 반대 시위로 지방 교도소에서 3년이나 옥살이를 했던 적이 있었지. 나는 사실 매스컴에서 적당한 때가 되면 퍼뜨리기 시작하는 수상한 `세대론'을 믿지 않는단다. 내가 젊었을 때에도 어김없이 `청년문화론'이 등장했지. 매스컴은 서슴지않고 청바지, 생맥주, 통기타를 이 알쏭달쏭한 문화의 상징물로 포장했다. 그때 대학문은 지금보다 훨씬 좁아 집안의 유일한 재산이던 소를 팔아 등록금을 마련할 정도였어. 서양에서 대학을 지칭하던 `상아탑'이라는 말을 빗대어 `우골탑'이라고 자조적으로 바꾸어 불렀지. 19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까지의 구미 사회는 사회적 격동기였어. 특히 미국은 베트남 전쟁으로 국가의 정체성이 도덕적 이념적으로 위기에 빠져 있었고 반전운동과 인종차별주의 반대운동이며 신문화운동의 격동에 싸여 있었는데, 당시 제도권과 기성세력이 이들을 달래고 수렴하는 과정에서 청년문화라고 명명을 해주었단다. 드디어는 거대한 자본의 상업주의가 이들을 삼키게 되고 마르쿠제는 `흡수된 공격력'이라고 이 새로운 문화적 경향을 규정했거든. 그런데 이런 생각들은 비슷한 시기에 태평양을 건너면서 그야말로 패션만 날아오게 된거야. 장발이라든가 군복 비슷한 작업복이라든가 포크송이라든가 마리화나까지도. 비트 이래로 미국의 동부를 중심으로 한 정치권력, 자본, 백인중심주의 문화 등등에 대한 거부로 서부에서 새로운 삶의 실천을 추구하는 흐름이 이어지고 히피가 출현하게 되잖아. 당시에 우리 사회는 대학생이 전체 취학인구의 30%에 지나지 않았어. 사회구성원 대부분이 농민 가정 출신이었고, 대학에 가지 못한 젊은이들이 소규모 제조업체와 노동집약적 하청공장이던 공단에 취업했어. 전태일이 죽던 것도 같은 무렵이었다. 따라서 나는 `청년문화론'의 허위에 반발했고 이를 `대학생 소비문화'라고 규정했다. 우리 사회는 해방 이후 지금까지 정통성 논쟁에서 자유롭지 못했단다. 외세 때문에 정치권력을 장악하지 못했기 때문이야. 더구나 남과 북에 분단정부가 들어선 이래로 우리는 세계적인 냉전체제에 강제로 편입됐기 때문이지.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보면 세계에서 전례가 없는 혹독한 분단의 척결과 민주주의를 향한 한 세대에 걸친 민중의 고난에 찬 노력이 지금 요만큼의 사회를 이뤄낸 거야. 나는 이제 이를 바탕으로 우리는 `정통성'을 가졌다고 주장하지. 군사독재 청산과 형식적 민주주의를 이뤄냈던 1987년 6월 항쟁 이후 우리도 근대적 의미의 `시민'이 탄생했지. 그렇지만 아직도 과거의 암울한 잔재에서 못 벗어났어. 이른바 개발독재시대 이래로 국가권력은 과잉 발전한 대신에 시민사회는 저발전단계에 있지 않니. 향촌과 유교문화의 폐습인 학연·지연을 중시하는 지역주의와, 분단·독재의 토대가 됐던 반공·반민중은 애매하게 보수라고 하는 권위주의를 낳았다. 우리는 지금 서구 선진사회가 실패했던 근대의 극복을 해낼 수 있는가 하는 시련에 직면해 있다. 사실 분단의 극복도 여기서부터라고 생각한다. 몇년 전의 `신세대'론에서 요즈음 매스컴에서 떠들어대는 `엔세대'론을 나는 또다시 믿지 않는다. 세계화니 신자유주의니 하는 것들이 사실은 냉전이후 세계질서 재편과정에 지나지 않으며 인터넷은 미국의 새로운 영토라거나 식민지라고 미국 스스로 주장하고 있거든. 국제적인 거대한 대중문화산업은 사회의식의 탈정치화를 부추기고 있단다. 아들아, 너희는 이에 대견하게 적응할 것이며 또한 극복할 책임도 피할 수 없을 게다. 내 젊은 친구 노래쟁이 서태지와 딴지일보 김어준을 생각한다. 너희들이야말로 근대적인 시민문화와 통일문화를 끌고 나갈 `시민세대'이기 때문이다. `바꿔 바꿔'를 노래하면서 총선시민운동에 과감하게 동참하라! 황석영 글....-한겨레 신문 칼럼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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