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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퇴장 ( 옮긴 글 )

중견작가 박범신(朴範信). 그는 1992년 여름, 느닷없이 절필을 선언하고 용인 근교의 한 농가로 내려갔다. ‘인기작가’라는 사슬에 묶인 ‘소설 기술자’ 노릇이 힘겨웠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3년여가 흐른 96년, 그는 ‘흰소가 끄는 수레’라는 작품을 발표하면서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그러면서 절필기간에 겪었던 심리적 갈등을 털어놓았다. “용인 근교 외딴 집에서 농삿일을 하면서 아침엔 사람들이 나를 잊기를 바랐고 저녁에는 행여 나를 잊지 않을까 염려하는 이율배반적인 번뇌와 갈등을 했습니다”언젠가 원로수필가 피천득(皮千得) 교수가 얘기했듯 사람이란 원래 남에게 잊혀지는 것이 두려운 존재다. 그러면서 그는 나이가 들면 남에게 기억되고자 하는 욕망에서도 벗어나야 한다고 충고했다. 사람들이 나이가 들고 물러날 때가 되어서도 선뜻 물러나지 못하는 것은 남에게 잊혀지는 존재가 될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특히 맨손으로 무언가를 이룩해내며 성공한 입지전적인 사람들은 현업에서 물러나기가 더 어렵다. 자수성가(自手成家)에 따른 자부심 때문에 ‘나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에 빠져 있기 십상이다. 대부분의 창업자들이 은퇴할 나이에도 경영일선에서 쉽게 물러나지 않으려는 것도 ‘나 아니면 안된다’는 아집(我執) 때문인 경우가 많다.요즘 잘 나가는 벤처기업인 미래산업의 정문술(鄭文述) 사장이 부사장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은퇴한 것이 세간에 잔잔한 화제가 되고 있다. 사업에 실패한 뒤 가족 동반자살까지 기도했을 정도로 어려운 고비를 넘기며 키워온 회사의 사장 자리에서 선뜻 물러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한푼이라도 더 많이 자식에게 넘겨 주기 위해 갖은 편법까지 동원하는 세태에 부(富)를 대물림하지 않고 능력있는 직원에게 경영권을 물려준다는 것은 대단한 결단이 아닐 수 없다. 물러나야 할 때 물러나지 않는 것은 마치 ‘끊어지지 않는 퓨즈’만큼이나 위험하다. 정사장의 은퇴가 ‘아름다운 퇴장’으로 비쳐지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이광훈 논설고문 ..... 경향신문 에서 옮긴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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