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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해보지 않고는 모른다 ( 옮긴 글)

생각이 트이고 매우 진보적인 한 미국인(백인)한테 이런 얘기를 들은 일이 있다. 그는 미국 사회에서 구조적으로 차별과 소외를 당해온 흑인에게 남다른 관심과 따뜻한 마음을 쏟는 인물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흑인이 아닌 이상 그들의 고통과 소외감을 진정으로 안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백번 맞는 말이었다. 몸으로, 타고난 조건으로, 그 처지에서 차별과 모멸을 당해보지 않고는 알 수가 없다. 아무리 생각이 열려 있고, 따뜻한 마음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 자신 장애인이 아니고서는 장애인이 겪는 개인적 사회적 고통과 서러움, 소외감의 백분의 일도 이해할 수 없다. 이 땅에 여성으로 태어나지 않고는, 화교·조선족·외국인 노동자로 살아보지 않고는, `명문대' 아닌 대학의 출신이 아니고서는, 그 참담한 차별과 수모를 이해할 길이 없다. 화교가 유일하게 발을 붙일 수 없는 지독한 인종 차별의 땅, 서울대 등 `명문대' 출신이 권력 엘리트의 대부분을 점거하고 있는 이 끔찍한 독과점의 땅에서는 더욱 그렇다. 혹독한 차별의 땅 영남 정권이 지배한 30여년 동안 호남 출신들도 그랬다. 마치 `미국사회의 흑인'처럼 그렇게 구조적 차별을 당했다. 아무리 지역주의를 극복한 인물이라 하더라도(한국사회에 그런 인물은 별로 없다), 호남 출신이 아닌 한 호남사람들이 겪었던 구조적 차별을 진정으로 이해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럼 너는 어떠냐고 물을지 모르겠다. 나 역시 그런 한계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했다. 당해보지 않고는 모른다. 개인적으로 이런 경험이 있다. 1994년 9월 초 평양을 방문하게 됐다. 김일성 북한 주석이 세상을 등진 직후에 이뤄진 것이어서 관심이 매우 높았다. 그런데 당시 은 방북 직전에 `북한에 유리한 언론인의 선별 방문'이라며 나의 방북을 왜곡했다. 공식취재가 제대로 허용되지 않아 자진해서 북한을 떠나 베이징으로 되돌아갔는데, 이번에는 그 통신사 베이징 특파원이 또 엉뚱하게 왜곡했다. 북한이 김일성 묘소 참배를 강요했는데, 내가 이를 거부하고 떠난 것처럼 보도했던 것이다. 나는 이 두 번의 경험을 통해 언론의 왜곡이 어떤 것인지, 그것을 당하는 사람의 심정이 어떤 것인지를 조금은 알게 됐다. 그 정도의 왜곡에도 그렇게 속이 뒤집혔는데 … 한국 언론의 왜곡·과장·허위 보도의 피해와 그것이 지닌 가학성·폭력성·잔인성은 당해보지 않고는 결코 알 수가 없다. 동아일보사가 시사주간지 의 족벌언론 기사와 관련해 명예를 훼손했다며 고소했다. 이에 앞서 중앙일보사도 2년 전 홍석현 전 사장이 탈세혐의로 구속됐을 때, 보도와 칼럼 등을 걸어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바 있다. 그동안 자신들은 온갖 비판의 칼을 휘둘러놓고도, 정작 자신들이 그 비판의 대상이 되자 이를 견디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들 족벌신문들이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그 기준을 그들의 신문 기사에 그대로 적용한다면, 아마도 무더기 고소사태가 벌어질 터이다. 족벌언론을 혁파하려면 새해 들어서도 언론개혁은 중요한 쟁점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새해 기자회견에서 언론개혁의 필요성을 강하게 밝혔고, 이 `100분 토론' `피디 수첩' 등을 통해 이 문제를 잇달아 제기했다.(는 뭘 하는지 잠잠하다.) 한국 언론, 특히 족벌언론의 폐해를 생각한다면 매우 때늦은 일이지만 그래도 우리 사회의 본격 의제로 등장하게 되어 그나마 다행스럽다. 족벌언론의 문제에 대한 진단과 해답은 이미 나와 있다. 정기간행물법 개정, 언론발전위원회 구성, 상법에 따른 정기적인 세무사찰, 엄격한 공정거래법 적용 등이다. 수구세력의 근원인 족벌언론의 혁파 없이는 개혁도, 남북 화해도, 사회 진보도 불가능하다. 우리는 그것을 혹독하게 경험해왔다.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했는데, 적어도 족벌언론의 폭력성과 그 폐해만큼은 당할 만큼 당해왔다. 실천만 남아 있을 뿐이다. < 정연주 논설주간 >- 한겨레 신문에서 따온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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