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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동아·중앙의 죄(퍼온글)

둥글둥글 살잔다. 한 세상 사는데 모날 까닭이 뭐 있냐고 반문한다. 처세의 슬기가 도드라진다. 달관을 못해서일까. 삶이 그리 만만해 보이지 않는다. 가령 둥근 돌이 있기까지엔 얼마나 숱한 모난 돌의 부대낌이 있었을까. 하릴없이 의문이 남는다. 둥글둥글 살길 권하는 이들은 말한다. 왜 시대착오적인 반통일세력·반민주세력 타령인가. 왜 언론인이 언론을 비판하는가. 왜 `정보화시대'에 케케묵은 노동운동인가. 얼핏 까다로운 물음이다. 하지만 굳이 고민할 수고는 접어두기 바란다. 그저 오늘의 언론에서 들려오는 악머구리 끓는 소리에 귀기울이는 것으로 충분하다. 주5일 근무제와 주40시간 노동이 노·사·정 합의로 실현될 가능성이 보이자 대다수 신문들은 합창에 나섰다. 합의 다음날 곧바로 가 목청을 높였다. `주5일 근무 그렇게 급한가.' 언제나 노동문제엔 수구적이던 동아일보는 주5일 근무제를 `인기주의적 국가정책'으로 지분거린다. 사뭇 노동자를 걱정하는 시늉도 보인다. “아마도 내년 초까지는 수십만명의 근로자가 일자리를 잃어야 하는데 바로 그 시점에서 이 제도가 실시된다면 노동계층간 극명하게 대조될 사회적 명암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노동시간 단축이 일자리늘리기 운동과 연결되어 있는 초보적 상식조차 없는 무식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와 도 부르댄다. 주5일제 단계적으로! 예의 시기가 적절하지 않단다. 마치 두 신문을 보노라면 주5일 근무제가 당장 실시되는 것처럼 보인다. 과연 그러한가. 아니다. 재계의 반발 탓에 노동쪽이 `업종별·규모별 단계적 도입'으로 후퇴한 것이 합의의 진실이다. 노동자들 양보로 어렵사리 이뤄진 노·사·정 합의를 단계적으로 실시하라는 주장은 명백히 반노동자적이다. 오해없기 바란다. 만일 세 신문이 자신들은 친자본·반노동임을 선언한다면 굳이 비판할 이유도 없다. 하지만 어떤가. 언제나 `불편부당'과 `중립'을 내세우며 독자를 기만하고 있지 않은가. 세 신문에 묻고 싶다. 스스로 법정노동시간을 누리고 있지 않은가. 언제부터 신문사에 휴일수당이나 시간외수당이 생겼는가. 1987년 노동자대투쟁에 편승해 언론노동조합을 결성한 이후다. 아니 더 근본적으로 묻고싶다. 하루 8시간 노동제는 아니 노동조합 자체는 그저 생긴 것일까. 어느날 자본가들이 당신들은 가진 것이 없기에 단결해야 한다며 조합을 만들라 했을까. 이제 어린이 노동은 비인간적이므로 금지한다고 공표했을까. 노동이 힘겨우니 하루 8시간만 하자고 인정을 베풀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1820년대까지 영국에 단결금지법이 있었다. 노동조합 자체가 부인됐음은 더 말할 나위 없다. 그 법 아래 수많은 노동자들이 처형당했다. 하루 8시간 노동 또한 마찬가지다. 1886년 5월 미국 시카코. 8시간 노동을 갈망하는 노동자들의 평화적 집회는 어떻게 되었던가. 경찰이 던진 폭탄으로 피범벅이 되었다. 7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가증스럽게도 저들은 노동운동 지도부의 자작극으로 몰아갔다. 폭동죄 명분으로 대량 검거선풍이 일었다. 당시 언론은 어땠을까. 그들에겐 사형이 마땅하다고 외쳤다. `인권의 나라' 프랑스도 예외가 아니었다. 1891년 5월 8시간 노동을 요구하는 시위대에 발포했다. 노동자 9명이 숨졌다. 2명은 어린이였다. 그렇다. 수많은 노동자들의 핏물이 강물을 이루고서야 오늘의 노동조합과 법정노동시간이 존재할 수 있었다. 세 신문사의 언론인들이 누리는 혜택은 그 핏물 위에 떠있다. 그것은 은유가 아니다. 사실이다. 핏물의 역사는 오늘도 진행형이다. 2000년 대한민국. 지난해 과로사로 숨진 사람은 325명이다. 98년 239명에 비해 가파르게 치솟았다. 올해도 6월말 현재 이미 204명이다. 그럼에도 무슨 떠세일까. 노동시간 단축이 급하지 않다고 합창하는 세 신문의 서슬에선 등등한 `살기'가 뚝뚝 묻어난다. 지금 이 순간도 과로로 숨져갈 노동자들에게 둥글둥글 살길 권하는 달관은 모욕이다. 아니 죄악이다. 조선·동아·중앙일보를 역사의 법정에 고발하는 까닭이다. 손석춘 여론매체부장- 한겨레 신문칼럼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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