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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혁명의 재 조명

- 1961.5.16일 은연자중 하던 군은 드디어 오늘새벽에 군사혁명을 이르켰다..반공을 국시의 제일의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태세를 재 정비강화한다...하고 우리귀에 생소한 혁명공약을 외우게 하던 그 5.16 군사혁명...혁명인지 ...?구테타 인지...?역사는 평가해 주리라...그 군사혁명의 중앙에 선 박 정희 소장...국가재건 최고회의 의장 육군대장 장 도영 부의장 육군 소장 박 정희...우린 ㅡ그때 깡마르고 야무진 박 정희 소장을 기억한다..박 정희 소장 45 세...제 2 군 사령부 부사령관...박 정희....그가 누군가?1960 년도 이승만의 장기독재에 염증을 느낀데다 3.15부정선거롤 장기집권을 꿈꾸던 자유당 정권을 학생들의 의거로 물러나고 새로운 정권인 장 면 정권....새로운 민주정권은 나약하고 확고한 군부의 신임도 못얻었던 정권...장면 정권은 그랬을까?그러나 겨우 1 년 집권인 민주당 정권...검증을 하려면 더 두고 봐야 하는것이 아니었을가?군에서 지켜보던 박 정희는 이런 장면정권이 불안했을가?그래서 우국충정에서 비롯된 혁명을 이르켰을가?혁명이 날때의 육군 참모총장은 장 도영 장군..그의 증언을 들었다..- 일단의 장교들이 야간 훈련에 참관하기 위해 모였다...그걸 듣고 해산 명령을 내렸고..김 재춘은 다들 물러났다고 보고해서 장도영은 사실로 알았다..- 새벽에 박정희는 거사계획을 편지로 써서 장도영에게 전달했다..이 편지를 받은 정도영은 ...박 정희가 술을 먹고 헛소리 한줄알았다..참모총장인 장 도영 대장은 그렇게도 낙관적이 었을가?어떻게 박 정희 소장을 그렇게 몰랐단 말인가?아니면 알고도 그냥 모른체 하고 있었을가?5.16 훨씬전에 ...장도영은 박정희의 옷을 벗기려는 상부의 계획을 알고 부탁했다..박 정희의 좌익사상으로 코너에 몰린 박정희를 구한것은 장 도영이란다어찌보면 장 도영 장군은 박 정희의 은인중의 은인...자기의 은인을 박 정희는 철저히 이용했다..- 혁명을 하고 나선 그에게 의장의 감투를 씌어주어 마치 군이 그의 거사를 지지한양 보였고...- 그이 이용가치가 없어지자 그를 반란 모의 하면서 그를 숙청했다..그렇게 그는 장 도영참모총장을 잘 이용하여 권좌에 오른다..- 은인이든 아니든 그는 철저히 자기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하여 군의 최고실력자를 등에 업고서 활보할수 잇었다.참모총장 장 도영은 혁명 다음날에.......대통령 윤보선의 부름을 받고서 청와대 방문..- 피아간에 피를 보지 말게 하라...이런 지시를 받았단다..대통령으로서의 당연한 지시였지....누가 아군끼리 총뿌리 겨누고 싸우길 바라겠는가...박정희지지하여 거사에 참여한 혁명군은 3700 여명...그런정도의 병력이라면 장 도영 참모총장은....그의힘으로 얼마든지 제압할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그러나 그는...그 대통령의 지시가 혁명을 인정하란 소리로 알았는지...??60 만 군대를 통솔하는 위치람 그정도의 병력은 아무것도 아닐것이다..제압을 안한 이유를..- 여순 반란 사건은 1 개소대가 그런 엄청난 희생을 치뤘다..군인 3700 여명의 병력을 소탕할수도 있었지만 희생을 내지 않기 위한 방안으로 이미 중앙을 점령한 혁명실세인 박 정희에게 원대복귀를 명령했단다...목숨걸고 이르킨 혁명을 ........이미 성공의 기미가 보인 거사를 참모총장의 명령한마디에 되 돌릴 바보가 어디있을가?명령이 먹히지도 않은 명령을 내렸단 말인가?왜 구테타의 징후를 알고도 신속하게 손을 쓰지 못하고 그랬을가?장면 총리의 행방..그는 미대사관을 찾았으나 거부당하고...혜화동에 있는 수녀원으로 잡입하고 말았다...어쩌면 그것이 현명한 수단이었을지도 모른 일이지만....후사를 도모할려고 안전한 수녀원으로 찾아들었는지 몰라도...그건 실수였다..그렇게도 목숨이 아까웠을가?그래도 일국의 총리가 혁명이 일어났다고 수녀원에 숨었다니...그렇게도 구차하게 목숨을 이어갈려고 그랬을가?미국으로 전문을보내 구테타군을 진압을 건의했지만...케네디는 총리의 자리이석이 바로 스스로 그 권력을 포기한것이라고 냉담하게 대했다..- 미국이 장면 정부와 운명을 같이한단 인상을 주지 말라...이런 국무성의 지시...혁명을 지지 한단 의도였지..- 반공을 국시의 제 일의로 삼고....이런 구호가 다분히 미국을 의식한 제스쳐가 아니었을가?좌익 사상에 물든 박 정희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선택이었는지 모른다아무튼 장면 총리는 거사 이틀후에 나타나서 내각 총사퇴를 발표..그의 짧은 정권을 스스로 내주고 말았다...의문이 많이 들었다....그리고 제 2 공화국은 무너질수 밖에 없었다는걸 느꼈다..- 어떤 막강한 권한도 없이 나약하기만 했던 장면 정권...그는 국민들도 군도 지지를 받지 못한 무능한 정권이었나 보다...그리고...참모총장 장도영의 애매모호한 행동..그는 구테타도 못막고 결국은 이용만 당하다가 박정희의 마수에 걸려서 미국으로 망명을 떠나야 했다..혁명정부의 얼굴마담..국가재건 최고회의 의장인 직함...무임승차한 그 장도영의 몰락은 어쩜 예고된 수순이 아니었을가?이런 기회주의자들....이런소신도 없고 군인정신도 없는 사람들땜에 민주정권은 망한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을가?벌써 40 여년이 지난 일들이지만 이 5.16 혁명이 민생고를 해결해 주고 국민의 배고픈것을 해결 해준 박 정희 대통령의 공은 인정해주어야 하지 않을가?민주화의길은 막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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