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기면 또 만들면 되죠 이게 세상사 입니다 :
16 日目
문상을 갔다
서대문 구청옆의 동신 병원 영안실...참 서대문 구청앞으로 걸어가 본것은 한 20 년이 지났다..거길 떠나온지 벌써 20년이 다 되어 온다..여기도 세월의 흔적을 엿볼수 있는 변화가 있었다.남자좌동으로 흐르는 홍제지천이 늘 배를 드러내 놓고 악취가 풍기던그런 곳이 이젠 말끔히 번화가로 변했다....산아래 볼품없이 지어진 낮으막한 집들이젠 고층빌딩으로 전날의 그런 모습은 찾을수 없다...아들 하나 없이 돌아가신 능금예 누님..빙긋이 웃은 영정이 살아있는것 같은 착각을 느끼게 한다.- 한번 와 볼걸...늘 이렇게 뼈아픈 후회을 하게 된다.이미 늦어버린 후회를.....아들없이 홀로된 누님은 막내 사위와 그 바로위 사위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큰 사위는 벌써 젊은 시절에 남의 빚을 지고 야반도주하고 어딘가로 혼사자서 살고 있고...두째 사위도 새째 사위도 돈은 많지만 성한 몸이 아니란다...그러니 막내와 그 위 사위가 손님을 맞고 있다.- 난 안 갈란다.그 놈의 집구석...나에게 언제 연락 한번 한적이 있었다냐?나 한테 연락을 한적이 없다고 해라.....아침에 전화 하자 그렇게 무정하게 (?) 대답을 하던 ㅡ흥래 형님.아무리 서운하기로 서니 마지막 가시는 사촌누님.....그 누님을 봐서라도 그렇게 말을 할수 있을가?- 사람이 나이가 먹으면 나이값을 해야지 ..어떻게 나이어린 동생앞서 그런 말을 할수 있는지....나도 그렇게 친한 입장은 아니지만 그런 연락을 받았다면 어떻게 몰랐다고 할수 있는가?기대도 하질 않고서 갔었지만 ㅡ그래도 양심은 있었겠지 않오고 그랬으면 맘이 편할가?- 아따 삼춘 고맙네...그러곤 내 볼에 입맞춤을 하는 조카 민복이...어린 시절 그렇게 친한것을 직접적으로 표현 하는 그녀...꼭 어렷을 적에 돌아가신 누님에게 당한 ㅡ듯한 착각이 든다...그 능금예 누님은 그랬었다.볼에다 뽀뽀 해주고 엉덩이를 때려 주고 하면서 친근함을 늘 표시했다.넓은 영안실..몇 팀의 손님이 술상을 앞에 두고 있었다흥래 형님은 나 보다도 한시간 전에 이미 와서 있었단다그래서 같이서 술한잔 하면서 지난날을애기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큰 딸인 다복이..- 그때 삼촌이 우리형편을 잘 알고 그렇게 도와준 것이 고맙게 생각해요사실 그때 얼마나 부끄럽던지....??- 아니 내가 어디 내 돈으로 그랬던가내 위치가 그런 위치였고 내 동네서 살았던 이유지...내가 첫 발령을 서대문구 남가좌 2동으로 났었지.1976년 6월 15 일...그 때 남가좌동은 모래내 있는 허름한 남가좌 동에서 이곳 주택지에 있는 명지대학교 앞으로 이전하여 온지 얼마 되지 않은 신흥주택지였다..번듯 번듯한 양옥이 주류를 이루던 그런 신흥 주택지...그때 통장을 통해서 우연히 다복이가 살고 있단 소식을들었고 그집 상황을 들었었지...- 커다란 양계업을 하다가 망해서 야반 도주 하고 부인과 애들이 어렵게 살고 있단 애기.....그 당시에 내 업무가 바로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사회 담당 업무..내 힘으로 도와 주었다.밀가루며 쌀등을 통장을 톻해서 도와 주었다.잘 살던 사람이 일시적으로 못 살게 되면 그 사람들은 어떤 자존심같은 것이 항상 몸에 담아 있어서 은연중에 표출되곤 한다..자존심 상하지 않게 조심성 스럽게 갖다 주란 말도 했다동으로 나오면 내가 더 많은 것을 줄수도 있는데 절대로 나오진 않을거고그래서 통장을 통해서 내가 도와줄 것을 도와준 것 뿐이었다...그 정을 안 통장도 나와의 위치를 알고선 잘 해주었다...사회 담당의 위치에서 내가 해 준것 뿐....하긴....당시의 사회담당은 권한이 막강해서 얼마든지 도와줄수 있는 입장이었지풍족한 양식과 돈도 있었고.....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동네의 사령탑이 아닐가...사람은 배푼 사람은 모른다.그러나 받은 사람은 그 은혜를 잊지 않는 법이다그 자기가 받은 혜택을 누군가를 통해서도 자주 애기했다고 한다..난 잊어버린지 오래된 애기지만.....지금은 형편이 좋아진 위치인데도 그 가난한 시절에 받은 것을 잊지 않고 애기한다...그 당시 정말로 말을 들어보니 끼니도 해결하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한다벌써 25 년을 훌쩍 뛰어 넘은 옛일인데...........창수와 살면서 들들 볶아서 한강에 투신케 한 그 와이프도 왔다..나이가 몇인데 머리는 노랑머리를 들이고.....고등학교 2 년이란 아들도 왓다멀쩡한 얼굴에 큰 허우대...잘 생겼다그가 생전에 뿌린 흔적을 이젠 2세를 통해서 바라보게 된다..어쩌면 코 하며 이마가 아빠를 그렇게 닮았을가?자꾸 뭉기적 거리면서 더있을려는 형님을 애기하고 가자고 했다어차피 밤을 새고 내일 발인까지 있을상황이 아니라면 가자고했다..사람이 哀事는 와야 한다그리고 잊혀지지 않은 법이다그렇게 춥던 날에도 전라도 까지 왔던 유 경림을 잊혀지지 않은 고마움으로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것 처럼........한시간 정도를 격심한 체증으로 버스에 시달렸더니 전철을 이용할걸 하는 후회가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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