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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본드
끊기면 또 만들면 되죠 이게 세상사 입니다 : 13 일째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

지난 일요일에 오래간만에 찾았던 북가좌동.....첫 발령지가 남가좌 동이었고 그 다음에 간곳이 북가좌동이었지..그때만 해도 북가좌동은 간선도로인 모래내에서 응암동쪽으로 지나가는 도로가 포장이 안된 비포장 도로였으니....그래도 그 북가좌동은 어차피 응암동으로 해서 불광동 쪽으로 가는 길목이라서 차의 통행은 많았지.서울이라기 보다는 시골의 냄새가 나는 그런 동네.빈공터엔 영세민들이 불법으로 천막을 치고 겨울을 나고 구청은 그런것이여간 두통거리가 아니었다.그 영세민들은 혈혈단신으로 무작정 상경한 어려운 사람들이라 어떤 대책도 없이 그렇게들 살았었다.그때만 해도 빈 공터가 즐비했으니깐..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어쩌면 피난민의 형태와 다름이 없었지..그런 사람들을 구제책으로 내 놓은것이 전세자금 융자였다아니 말이 융자지 그저 준돈이었을거다하나둘 해결한 것이 바로 나였다내가 그런 어려운 영세민을 전담한 담당였으니깐....사회복지 담당이 적격이라 생각한 것일가?남가좌동에서의 어떤 이력 때문인가?24 가구를 전셋방을 얻어 주고 계약하고 이사까지 책임지는 행정을 했으니 퍽도 당시로썬 중대한 일이었다..영세민 이주 사업....어떤 악랄한 영세민들은 우리동네서 사라졌다가 다시 엉뚱한 곳으로 가서 그런 숫법으로 돈을타기도 했다.그때만 해도 어떤 조회가 어려웠으니깐........그 사람들그 안으로 들어가 대화를 해 보니 인정이 많고 너무도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란 것을 알수 있었다黃 利基란 사람은 내가 그런 이주관계로 자주 접촉하고 험악한 상황까지 가고 했는데 나중엔 절친한 관계로 발전하여 내가 이사하면 무보수로 와서 이삿짐까지 날라다 준 사람이었다....어떤 이해 타산을 따지지 않고서 헌신적으로 일해 주던 황이기..나보담은 한 7 살 정도 위로 그 분은 나중엔 친형님처럼 대했지..가난한 사람들그들은 재물이 없어서 가난하게 살아도 마음만은 퍽도 인정이 넘치고 늘 따뜻한 인간성의 소유자 들이었다..그때에 내가 맏은 사회 담당..그 일을 할때 처럼 보람을 느껴본 적이 있었던가?내가 가난하게 산 탓에 아마도 그런 사람들과 쉽게 동화되곤 했을지도 모른다..그런 사람들의 심리를 그래도 깊이 알수 있었을 테니깐...황 이기씨를 알고 난뒤엔 난 많은 도움을 받았다인구 조사한다고 하면 와서 자기의 딸들을 보내 도와주곤 했지..그런 사람들그렇게 마음이 따듯한 사람들을 다신 만나보지 못했다..이리 저리 주판을 튕기면서 이해 타산을 열심히 계산하는 요즘의 사람들그때는 일단 믿으면 그렇게 헌신적으로 도와주고 믿었지이런 성탄절이나 설에는 양말 한켤레를 신문지에 꼭 싸갖고 와서 내 책상속에 넣고 간 김 영레 할아버지...눈에 선하다.가난해도 마음이 풍요로운 사람들 그리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난 그런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사회복지 업무를 하고 싶다.......그때 북가좌동에 가서 보니 그 영세민들이 집단으로 살았던 곳은 아파트가 건립되어 좀은 생소하고 정이 사라진 곳처럼 보였다아마도 그 아파트에 간다면 내가 자주 만났던 영세민들을 만날수도 있을거다..........그 영세민을 관리하고 도와준 곳은 동사무소였으니깐...그 정이 흐르고 인정이 살아 숨쉬던 사람들...그 사람들을 만나 보고 싶다.갈수록 삭막하고 살아갈수록 인정이 매말라 가는 세태 탓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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