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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과 껍데기( 퍼온글 )

“거품은 모두 사라졌다. 남은 것은 우리뿐이다.” 시민언론운동가의 쓸쓸한 토로다. 2001년 언론운동을 공글리는 마당이었다. 그랬다. 그 자리에 현직 언론인은 취재기자든 언론노조 간부든 찾기 어려웠다. 비장한 고백이 절절이 가슴에 와 닿은 까닭이다. 한나라당이나 자민련에 기대는 없었다. 그나마 김대중 정권을 `압박'한 까닭은 하나다. 정기간행물법 개정은 국회만이 할 수 있어서다. 그러나 민주당 안에도 언론개혁에 열정과 소신을 지닌 이는 겨우 한두 명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언론개혁에 올곧은 뜻을 밝힌 정당이 없진 않았다. 민주노동당과 사회당이다. 하지만 두 당은 의석 하나 없다. 신문권력이 말살에쇠살을 늘어놓으리란 예측은 누구나 했다. 문제는 방송이다. 지상파 방송 3사 두루 언론개혁 의제를 비켜갔다. 언론개혁시민연대 상임대표가 사장이 된 조차 `혁명적 선출'에 값할 만한 변화는 없었다. 서울 중심의 방송3사는 선정적·폭력적 화면을 전국 곳곳 안방 깊숙이 쏘았다. 귀한 전파를 탕진한 셈이다. 그 결과다. 미국 조지 부시 정권에 추파를 서슴지 않는 냉전언론과 그 언론이 조성한 여론으로 6·15공동선언은 사문화했다. 반민주·반통일 보도로 일관해온 언론귀족은 거듭날 섟에 `언론투사'로 둔갑했다. 탈세를 비호하며 언론자유를 부르댔다. 애오라지 개혁에 나선 것은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이었다. 하지만 산별노조를 서부렁섭적 띄워 조선·중앙·동아 노동조합과 사실상 결별한 아쉬움을 남겼다. 그래서다. 더러는 언론개혁이 흐지부지됐다고 살천스레 미소짓는다. 과연 그럴까. 만일 언론개혁의 목적이 김 정권의 언론통제였다면 옳은 평가일지 모른다. 그러나 전혀 아니다. 민주·통일언론을 일궈내려는 언론개혁운동은 올해 크게 성숙했다. 남은 것은 `우리뿐'이 아니다. 우리다. 보라. 독자의 바다에 언론개혁의 파도가 물결치고 있지 않은가. 독자들은 두 눈으로 확인했다. 신문지면이 신문사 이해관계에 따라 얼마나 굴절되는가. 세무조사를 놓고 탄압과 개혁이라는 정반대 보도가 나왔다. 신문 읽기의 혁명을 생생하게 `학습'한 셈이다. 충청북도 옥천의 조선일보바로보기운동을 비롯해 지역언론운동도 싸목싸목 퍼져갔다. 인터넷에 뜬 독자들의 열정은 또 어떤가. 오랜 침묵에 잠겼던 대학인들 사이에도 개혁의 불길은 당겨졌다. 그 불씨는 새 봄엔 더욱 타오르지 않을까. 민주노총의 결의가 상징하듯 노동자들에 언론개혁의 바람꽃이 일었다. 스스로 고임금자인 언론인들이 `고임금 이기주의'로 몰아친 해직조종사들까지 분연히 언론개혁에 동참했다. 무엇보다 언론개혁운동 공방으로 우리 사회의 은폐된 구조가 또렷하게 드러났다. 언론이 얼마나 가공할 권력인지 그리고 얼마나 정치적인지 밝혀졌다. 사회과학 교수들의 글이 얼마나 비과학적일 수 있는지, `순수문인'들이 얼마나 `참여작가'인지도 체험했다. 아무리 언론인·교수·문인 윤똑똑이들이 진실을 비틀며 어루꾀도 더 많은 독자들은 왜 오늘 신문권력이 반통일·반민주세력인지, 수구언론과 수구정치가 얼마나 깊숙이 연결되어 있는지 공감대를 넓혀가고 있다. 희망은 바로 그곳에 있지 않을까. 아직은 저들이 보기엔 무지렁이일지 모른다. 뿔뿔이 흩어져 있기에 시들방귀로 문문하게 볼 터이다. 하지만 연대의 푸른 싹은 이미 냉전의 언 땅을 맹렬하게 뚫고 나왔다. 36도 체온을 모아 햇살을 이룰 때다. 사람과 사람이 만드는 역사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은 그래서 한결 아름답다. 모든 거품은 사라졌지만 온갖 껍데기는 엄존하고 있다. 저들의 즐거움이 온 거리, 온 안방에 넘쳐나는 오늘, 가난한 시대를 살다간 민중시인의 절창이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껍데기는 가라/한라에서 백두까지/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손석춘/ 한 겨레 신문 여론매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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