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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목과 윗목( 퍼온글 )

여기저기서 갈라지고 찢겨지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 현상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그 정도가 이제는 막다른 골목을 향해 치닫고 있는 느낌이다. 최근 이런 현상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곳이 부동산시장이다. 하룻밤 자고나면 500만원이 올랐니, 1000만원이 올랐니 하는 서울 강남지역은 하나의 상징일 뿐이다. 평범한 월급쟁이가 정당한 방법으로 평생 모아 아파트 한 채 마련하기도 어려운 현실에서 1년 새 30평형대의 아파트값이 2억원 가까이 오르고, 전셋값이 1억원 이상씩 치솟는다는 게 있을 법한 일인가? 멀리서 이를 바라보는 지방사람들은 고사하고 같은 서울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조차도 강남은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그들만의 땅'이 되고 있다. 예전에 불었던 부동산값 상승 바람은 지역별로 거의 무차별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강남 아파트값이 그렇게 춤을 추는데도 대부분 지역의 아파트값은 몇 년 전 수준에서 꿈적하지 않고 있다. 이제 사는 지역만으로도 그 사람의 소득수준, 사회적 지위 등이 구별된다. 골고루 뒤섞여 조화를 이루며 살기보다는 너와 내가 살고 있는 땅이 서로 다르다고 구별지으려 한다. 그 차별화의 꼭대기에 `강남'이 있다. 자본주의의 꽃이라는 기업, 그리고 그 속에서 밥벌이를 하며 살아가는 월급쟁이들도 철저히 차별화되기는 마찬가지다. 몇몇 재벌기업들은 한국의 대표기업이란 칭송을 받으며 그렇게 어려웠다던 지난해에도 수천억원씩의 흑자를 냈다. 반면 대기업에 납품하며 살아가는 대다수 중소기업들은 직원들 월급 챙겨주기에도 벅차다. 재벌기업들은 일류브랜드를 앞세워 초과이윤을 내고 있지만 하청업체들의 납품단가는 몇 년 째 제자리걸음이다. 번듯한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은 지난 연말 최고 1000%에 가까운 보너스를 받고 표정관리하기에 바빴다. 반면 대부분의 월급쟁이들은 보너스는 커녕 잘리지 않고 한해를 보낸 데 감사하며 연말을 보내야했다. 정규직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임금노동자의 절반이 넘어버린 임시직들은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연봉제 도입이 확산되면서 같은 회사 내에서의 차별도 뚜렷해지고 있다. 무슨 MBA(경영학 석사)니, 무슨 전문가니 하면서 억대 연봉자가 속출한다. 한쪽에서는 아직도 우리 기업의 평사원과 최고경영자의 월급 차이가 작다며 그 격차가 더 벌어져야한다고 부추긴다. 그래야 미국식의 경영효율화가 이루어진단다. 소득격차 심화, 소비양극화 고착화 등은 거론하기조차 진부하게 돼버렸다. 상위 20%의 소득이 하위 20%의 다섯 배를 훨씬 넘는다는 통계수치는 이제 빛바랜 죽은 지표에 불과하다. 일부 부유층들이 서울 압구정동과 청담동의 명품관을 순례하며 루이뷔통, 구찌 등 유명 수입품을 `쇼핑'하는 동안 대다수 서민층들은 상설할인매장을 찾아 한푼이라도 싸고 그럴 듯해 보이는 옷가지를 `건지는' 게 일상화된 지 오래다. 우리 사회 각 부문의 양극화가 이렇게 심화된 것은 1997년 말의 외환위기를 거치면서부터다.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더불어 살기'보다는 `나 먼저 살고보자'는 논리가 우리 사회에 팽배하다보니 사회 각 부문에서 차별화가 두드러졌다. 그리고 정부는 이를 부추겼다. 외환위기로 앞이 캄캄하던 3여년 전, 정부는 이른 바 `웃목 아랫목론'을 내세워 불균형성장을 합리화했다. 외환위기 극복 초기에는 아랫목부터 따뜻해지지만 시간이 지나면 웃목에도 온기가 미쳐 온방안이 골고루 훈기가 돈다는 비유였다. 그러나 최근의 우리 사회는 아랫목은 열기가 넘쳐 장판이 타들어가는 데도 웃목에 놓여있는 자리끼에는 싸늘한 살얼음이 얼어있는 형국이다. 아랫목의 온기를 웃목까지 이어지게 하는 특단의 대책이 시급하다. 또다시 `웃목 아랫목론'만 되뇌이고 있다가는 최근 가시화하고 있는 경기회복세가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의 마지막 과제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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