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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사람병` 아시나요

가끔씩 가는 서울. 서울에 갈 때마다 어김없이 내 몸에 찾아오는 증상이 있다. 제일 먼저 나타나는 증상은 서울 톨게이트에서 시작된다. 눈이 따가워지는 것이다. 그리고 고속버스가 가다서다를 반복하며 도심으로 들어 설 때쯤이면 가벼운 두 통이 생겨난다. 7년 전 서울을 떠난 초기에는 서울에서 하루쯤 지내고 나서야 나타나던 증상들이다. 지하철. 이번 서울행에서 나는 지하철은 참 편리하다는 이제까지의 내 편견(?)이 깨지고 도리어 겁이 더럭 났다. 지하철이 무섭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된 나를 스스로 의아하게 바라봐야 했다. 지하철 자동문이 스르르 닫히는 순간 숨이 콱 막히면서 과연 내가 이 굴속에서 무사히 살아 나갈 수 있을까 하는 공포가 엄습했다. 잠시 스쳐간 것이었지만 분명 공포감이었다. 이번에 할아버지 제삿날이라 서울 큰집에 갔다가 새삼스레 알게 된 것이 있다. 내가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도 이제는 완전히 서울을 떠나버렸다는 사실이다. 수백 명이 지하철 객차 한 칸에 빡빡하게 몸을 맞대고 서 있으면서도, 더구나 몸 속 깊이 들여 마셨던 숨을 서로 주거니 받거니 나누어 마시고 있으면서도 옆 사람에 대한 그 철저한 무관심들. 그 섬뜩한 무표정들. 사람 얼굴이 원래 저랬나 싶을 정도였다. 서울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수단일까?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본능적 선택일까? 이걸 `서울사람병'이라고 이름 붙여볼까? 아니면 이마저도 고귀한 `생명현상'으로 봐 줘야 하나? 지하철 노선도보다 더 헝클어지는 상념이 지하철 땅굴을 벗어나서도 막힌 내 숨이 안 트였던 내력이다. 동네 어귀에 낯선 개 한 마리가 지나가도 고개를 빼고 한두 마디 혼잣말이라도 내 놓는 우리 동네 시골 풍경이 떠올랐다. 하물며 사람임에야. 개가 들으면 기분 나빠할지 모르겠다. 우주적 차원에서 사람이 개보다 나은 게 뭐가 있다고 개를 그런 식으로 비교하냐고 멍멍 짖을지 모른다. 서울에 살면서 남의 사정 봐 주다가는 당장 자기가 넘어지니까 그렇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자기 돈, 자기 식구, 자기 생각, 자기 연고자들에게는 과다한 집착과 정신병적 애착을 갖는 걸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차, 여기서 생각을 급히 멈추었다. 이 생각은 취소해야겠다. 지나친 비약이다. 이 대목에서는 서울사람이 들으면 기분 나쁠 것이다. 그게 어디 서울사람만의 문제냐고 촌놈 지랄한다고 할라. 열악한 환경에 사는 개체들은 살아남기 위한 작용으로 내성이 강화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스스로 독해져야 버틴다는 것이다. 더러운 공기. 자연상태의 식품은 하나도 없고 밥상을 장악한 가공식품. 시끄러운 소음. 아귀다툼. 과다한 일거리. 오염된 물. 소독약에 죽은 미생물과 바이러스들의 시체들…. 이런 환경에서 살아 남으려면 어쩔 수 없이 자기 속에 독한 기운을 늘 넣어 둬야 한다는데 얼마나 고달플까 서울사람들. 서울에서 하룻밤 자고 나니 두통도 미열도 사라졌다. 서울사람병은 참 전염성도 강하다. 전희식/ 귀농인 ( 한겨레 신문 칼럼에서 퍼온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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