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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본드
끊기면 또 만들면 되죠 이게 세상사 입니다 : 14 일째

내 삶에 후회없다.

어느 구독자님,내 직업이 궁금했단다.그건 ,내 일기의 어딘가에 자주 애길 했었는데 눈치 못채었나?난,1972 년도에 공직에 들어온 이후 한결같이 이 길을 천직으로 걸어온대한민국의 어느 누구와도 같은 그저 평범한 공직자다.그간 몇번의 직업의 변화의 기회를 맞았건만,이 길을 바보 같이도 그렇게 변함없이 걸어온 것.시골의 면사무소에서,그리고 교정직을 거쳐서 여기 서울시로 3 번의 변신을 했다.나름대로의 어떤 자신의 발전을 꿈꾸면서.................늘 공직자란 멋이 있고, 주위인의 부러움의 시선으로 보는 위치란생각에 들어가 보니 시골은 맨날 논둑길을 걸어다니거나,기껏해야 자전거로 달려 가야 하는 그런 암담하게 보인 현실..다들 도회로 , 도회로 달려가 출세를 하는 마당에 왠지 시골에묻혀 있는 자신이 초라해 보여 탈출을 꿈꾸어 간곳이 교정직..거기 들어간 것도 딴은 사명감이라던가?그 직업이 매력이 있어서가 아니었다.우선 들어가기가 쉬운 점.수학으론 100 점 맞을 자신이 도저히 없어 보였었다.그 수학이 없었다.수학없는 과목은 자신이 있었거든...................그리고 그 길의 4 년간.죄인아닌 죄인의 신분으로 회색 담장에 갖혀 지내야 했던 4 년.창살없는 감옥이 바로 여기가 아니던가?죄수복을 입지 않았을뿐,그 수인들과 다를게 뭔가?그 제한된 공간에서 24 시간을 함께 지내야 하는 생활.나도 자유가 그립다.창살은 없지만 그 감옥에서 사는것과 진배없는 그런 구속된 생활이바람직한 생활이 아니고,모자 쓴단 위치..제복을 입는 곳의 그 딱딱한 직장.난 싫었다.서로를 불신하고,서로를 감시하는 듯한 직장 분위기..성실이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요령을 부려서 상사에게 자주 용돈쥐어주는 사람이 능력있는 사람으로 뜨는 거기의 생리.4 년동안에,난 질렸다.- 불신, 의혹, 비 인간성,딱딱한 분위기, 한 계급 높은 자들의 거들먹 거림...............군대 보담도 더 심한 그 기율..생리에 맞지 않았다,늘 근엄해야 하고, 늘 정숙한 모습으로 옷을 입어야 하고 두발은 어떻게 해야 하고...등등.....그런 구속이 싫었다.과감한 탈출을 했었다.그땐 사정의 칼날이 어김없이 겨누었고 기세 좋던 고참들이 추풍낙엽 처럼 그렇게 허무하게 지고 있었던 시절이라.......서울시로의 전업.다들 종로니 중구니 하는 알짜배기를 원했지만,순진한 난 내가 살던 그 서대문구가 젤로 좋은 곳인줄 알고 원했다.그 당시의 가장 변두리 지역인 남가좌동 동사무소.......마누라가 마을 금고 이사장으로 있음서 부 동장 처럼 간섭을 하던 그 뚱뚱보 아줌마....하두 배가 나와서 남편인 동장은 너무도 왜소해 보였지..출세는 못 했다.다른 사람들 처럼 여기에 첨 부터 말뚝( 이거 부적절한 용어 아닌가?)을 깊이 박았더라면 진즉 승진도 했으련만........갓길로 다니다가 여기로 오니 다른 사람들 보담 몇년이 훌쩍 늦어버렸다항상 뒤로 쳐지곤 했다.그때의 분통 터질 노릇..허지만,후회는 없다.이젠 몇년이 남지 않았지만, 현재에서 최선을 다 했다..- 그 많은 감사에 인사기록 카드에 붉은 글씨 올라가지 않았고..- 비리 관계로 조사 받은 적 없었고 .......- 표창은 받았을 지언정,징계 받은 그런 불명예는 없었다.이게 자랑이 아닌가?교정직에서의 재임동안의 그 4 년.세상은 어떻게 살아야 한단 것을 알았고 어떤 경우에도 죄를 지어선안된단 것을 보고 느끼고 해서 알았다...훌쩍 지나온 세월이지만,내 걸어온 이 길에 후회는 없다.-내가 야망이 없어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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