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기면 또 만들면 되죠 이게 세상사 입니다 :
14 일째
생각나는 막레 이모
작년은, 구청서 연결한 버스를 타고 귀향했었다.그렇게 긴 시간을 흔들림서 갔던 귀향.서해안 고속도로가 전 구간이 연결되지 않아서 군산에선호남선으로 진입했던가?암튼 엄청 밀렸었지.기대로 간 고향은 여전히 쓸쓸했고,만나리라던 친구들도 보이지 않았었던 귀향였다.막레 이모가 자식들을 다 델고 왔었다.병근, 병복,그리고 그의 제수들.-이모, 왜 병완이는 안 온데요?-몰라?그 놈은, 어딜 가기 싫어해서 말이다.그렇게 말씀하신 이모님의 얼굴은 조금의 쓸쓸함이 베어보였다.장남이 오지 않았으니..........막레이모에 대한 추억은 아주 많다.그리고 그립다.모두 한 동네로 시집을 보낸 외할머니 탓에 여기 저기에 사는 이모란없었다.딸들이 한 동네 사는 것이 뭐가 좋다고 그렇게 한 동네로 시집을 보냈던지........??여름 방학이든, 겨울 방학이든 도시에서 찾아온 애들을 보면 부러웠다.그땐, 먹고살기 조차 힘든 시절이라서......도시에서 온 애들은 왠지 잘 살거란 그런 막연한 상상을 한 탓일가?난,방학이라고 해야 도대체 찾아갈 친척이 없었다.모두가 그 근방에 살고 있는 친척들.아버지 친척도 한 동네 아님 건너 마을 남산에 사셨고,이모들은 한 동네에 모여 살았으니........그런데 , 한 동네로 시집을 보내보니 어떤 후회를 했던가?외할머닌, 막레 만은 조금 먼 동네 봉학.그곳으로 시집을 보냈었다.그래야 면만 다를 뿐 겨우 4km 정도?그래도 그 봉학은 내 마음에 자주 가고픈 곳이었다.-사나이 가는 길 앞에 웃음 만이있을 소냐?하고 장가온 첫날 이모부가 부르던 노래.기억하고 있다.어쩜 인물도 훤하고 저렇게 잘 생겼을고?그리고 저 노래..참 어렸을때 나의 눈엔, 이모부는 여기 동네 사는 이모부들관비교가 되지 않은 멋쟁이 였다.이모부는,잘 생기기도 했지만, 부자였다.비록 시골이긴 해도 이모부는 손수 일을 하지않고 집에 일꾼을 델고서많은 농사를 하는 분이었다.늘 처가에 올땐,양복 차림과 번쩍이는 구두를 신고 오셨다.머리는 매끄러운 포마드 바르시고......하얀 피부와 알맞는 몸매와 잘 생긴 얼굴.내 이상형이었다.어떻게 상상해 보면 막레 이모도 이쁘긴 했어도 이모부완비교하면 조금은 이모부가 더 잘 생긴거 같아 보였지....형과 자주 다투곤 했다.친정에 온 이모를 따라 이모부 집에 서로 갈려고...- 엄청나게 큰 집이며 넓은 뜰..사랑채와 본채가 따로 떨어진 집이었다.이모부는 그 당시에도, 버터에 밥을 비벼 잡수곤 했다.그게 참 신기했다.- 이모 , 저게 뭐요?- 저거?빠다, 너도 한번 비벼 먹어 볼래?맛있어.난, 한번 먹어보곤 입에 맞지 않아 먹지 않았지만..버터에 밥을 비벼 먹은 것은 그 후로 한참후에 먹었던 기억.막레 이모댁에 자주 갈려던 이유가 있었다.가면 올땐 늘 용돈을 풍족히 주곤 하던 이모부.인정이 많은 분이셨고, 늘 미소가 떠나지 않던 분이셨다.어쩜 이모보담도 이모부가 더 생각을 했던거 같다.호사다마라 했던가?잘 살게 되니깐 딴 짓을 하게 되었다노름이었다.이모부의 그런 노름은 그 많던 문전 옥답을 전부 넘기고 그 고래등 같던 집도 남의 수중으로 들어가 버리고.....초라하게 변두리로 가서 지은 단칸방의 신세로 전락..가련하게 되어 버렸다.다른 사람들 같으면 챙피하여 고향을 등졌을 텐데 악착같이 고향을 지킴서 살았었다.잃어버런 부귀를 다시 찾겠단 일념였을가?50 대 중반에, 이모부는 위암으로.......뼈만 남은 몰골로 원효로의 어느 교회에 계셨다.교회의 기적을 믿음서.그때 숨을 거두기 얼마전에 그 교회에 갔었지.어쩜 그렇게도 말랐을가?그 허여멀건 피부와 알맞는 몸매는 어디로 가고 큰 눈과 뼈만 남은 이모부.이모도 이미 각오를 하고 마지막으로 왔던거 같았다.- 어쩌냐?당신이 가자고 해서 왔는데 여기서도 안될거 같더라.그렇게 쓸쓸히 말씀하시던 막레 이모.그뒤로 한 일주일 후에 고향에 오신 이모부는 별세하고 말았다.혼자 사시던 막레 이모.당신이 추석을 맞아서 친정을 그렇게 자식들과 며느리를 델고 온건 아마 처음이란다.어떤 마지막 길이었을가?작년 추석에 친정길이.......-이모님, 이거 몇푼되지 않지만 가셔서 잡수고 싶은거 사 잡수세요억지로 손에 쥐어준 5 만원.그게 마지막 였다.한 1 주일정도후에....비보.이모의 부음을 들었다.혈압이 높으신 막레 이모는 일을 하시다가 그 자리에서 절명했단다.꼭 작년 이 맘때 추석 날 아침.웃으면서 손을 잡으시던 막레 이모.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시리라.이승에서 누리지 못했던 행복을 이모부와 함께 나누면서..명복을 빈다.그리운 막레 이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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