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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기면 또 만들면 되죠 이게 세상사 입니다 : 13 일째

유고( 有 故 )

대통령 有故..1979.10.27 조간에 났던 대 문짝만한 활자.헌데 왜 그렇게도 크게도 났을가?그리고 얼마 있지 않고서 발표된 것.김 성진 문공 장관의 칠판에 쓴 거..이미 박 대통령은,싸늘한 시신으로 국군 통합병원에 있었는데 유고라?남북 대치 상황에선, 그렇게 밖에 밝힐수 없었겠지..장장 18 년간의 철권 통치를 했던 박 정희........헌데,,그날.....왜 그렇게도 허전하게 느꼈던가?-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쐈다.그랬다 던가.부마 사태가 시시 각각으로 격렬해 지던 상황.대통령의 심기도 불편한 그때에........마음을 전환시키기 위한 것이었을가?삽교천은 왜 갔으며.......왠 술자리는 마련했던가?그런 운명의 술 자리.....주도 면밀한 계획으로 시해하지 않은 김 재규.그건 그 이후의 조사 과정에서 여러가지가 드러난다.김 재규가 야망을 갖고서 대통령 시해후의 어떤 시나리오가 있었담왜 중정으로 가지 않고 육본으로 차를 몰았을가?자신을 옭아맨 육본 벙커....김 재규.그는, 그 대통령 자리를 탐했다기 보다는.....모든것을 차 지철과 의논하고 자신에게는 늘 뒷전으로 밀리는데에 대한 섭섭한 감정과 술 자리에서의 차 지철의 오만..그게 더 자극적인 것으로 받아 들여지지 않았을가?- 각하 이 버러지 같은 놈과...얼마나 미웠으면 그런 말을 했을가?암튼 김 재규는 박 통을 시해한 대역 무도한 죄인으로 단죄되어사형이 집행 되었다.합수 본부장의 발표..그렇게 믿음이 가던 그의 발표.허나,1979 년 궁정동 만찬의 총소리.그 진실을 말해 줄수 있는 사람은 없다.어쩜 그때의 신군부의 발표.김 재규를 단죄하는 것 만이 당연한 수순인듯 그렇게 ......당연히 받아 들였고.....김 재규에 대한 정당한 평가.그건 아직도 남이있다고 봐야 한다.권력에 눈이 어둔 나머지 박통을 시해했는지....끄덕도 없이 민심을 읽지 못하고 떡 버티고 선 유신의 심장을쏜 충정인지.....유신이 쓰러지고 민주화가 잠시 꽃 피운줄 알았었다.허나.......어찌 알았으랴?그 다음에 ,,그 봄날에 광주에서 벌어진 그 살육을...국민이 군을 불신하고 적으로 대항했던 그 쓰라린 5.18.....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했다.그리고 진실은 아무리 감추려 해도 밝혀 진다.1979 년 10 월 26 일.....궁정동의 김 재규의 총성.그 진실도 보다 명쾌하게 밝혀 져야 하지 않을까?역사는, 승자들의 것이라 하지만.............영원한 승자가 어디 있는가.그때 박통이 조금만 더 관용을 배풀고 민주화를 약속했다면......유신 헌법을 철페하고 정도만 걸었다면......??부질없는 가정이긴 해도...........우린 이 보다 더욱 풍요를 누리고 살지 않았을가?그는 누가 뭐래도 우리의 배 고품을 해결해준 위대한 대통령이었으니..공과과......그것도 공정한 평가가 있어야 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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