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기면 또 만들면 되죠 이게 세상사 입니다 :
14 일째
12,12 사태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노태우 등이 이끌던 군부 내 사조직인 ‘하나회’ 중심의 신군부세력이 일으킨 군사반란사건. 전두환 등의 신군부세력은 군부 내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하여 정승화가 김재규로부터 돈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10·26사건 수사에 소극적이고 비협조적임을 내세워 정승화를 강제 연행하기로 계획하였다. 이를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11월 중순 국방부군수차관보 유학성, 1군단장 황영시, 수도군단장 차규헌, 9사단장 노태우 등과 함께 모의한 후 12월 12일을 거사일로 결정하고 20사단장 박준병, 1공수여단장 박희도, 3공수여단장 최세창, 5공수여단장 장기오 등과 사전 접촉하였다. 그리고 12월 초순 전두환은 보안사 대공처장 이학봉과 보안사 인사처장 허삼수, 육군본부 범죄수사단장 우경윤에게 정승화 연행 계획을 수립하도록 지시하였다. 이 계획에 따라 12일 저녁 허삼수·우경윤 등 보안사 수사관과 수도경비사령부 33헌병대 병력 50명은 한남동 육군참모총장공관에 난입하여 경비원들에게 총격을 가하여 제압한 후 정승화를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강제 연행하였다. 한편, 총장의 연행에 저항할지도 모르는 특전사령관 정병주, 수경사령관 장태완, 육군본부 헌병감 김진기는 보안사 비서실장 허화평에게 유인되어 연희동 요정의 연회에 초대되었다. 연회 도중 총장의 연행사실이 전해지자 정병주·장태완 등의 육군장성들이 대응태세를 갖추려 하였으나, 이미 전두환이 박희도와 장기오에게 지시하여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점령하게 함으로써 육군지휘부를 무력화시킨 후였다. 이와 같은 일련의 사태진전은 당시의 대통령 최규하의 재가 없이 이루어졌다. 사후 승인을 받기 위하여 신군부세력은 최규하에게 압력을 가하여 총장연행 재가를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이에 신군부세력은 국방장관 노재현을 체포하여 그를 통하여 대통령이 총장연행을 재가하도록 설득하였다. 결국 최규하는 13일 새벽 정승화의 연행을 재가하였고, 이후 신군부세력은 제5공화국의 중심세력으로 등장하였다. 12·12사태의 주도세력인 전두환과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재임한 1993년 초까지 12·12사태는 집권세력에 의하여 정당화되었으나, 그 후 김영삼정부는 하극상에 의한 쿠데타적 사건이라고 규정하였다. * 야후사이트에서 퍼 온글 *그랬었다.일단의 신군부가 권력의 공백을 틈타 이르킨 명백한 쿠테타..어찌 혁명 운운할수 있을까?수경 사령관 장 태완 소장.특전 사령관 정 병주 소장.육본 헌병감 김 진기 준장.그들 편에 서 있지 않은 위 세명을 미리 유인책으로 연희동으로오게 하고 그 공백을 틈타 벌인 구테타..이미 그 기미를 알았을땐 일단의 지휘책임자에 있던 자들은모두가 신군부의 편에 서 있었지....전두환 보안사령관 상관들도.........참 군인 장태완,우직할 정도의 군인인 그....신군부의 어떤 회유에도 응하지 않자 그를 체포하는 과정에서그의 충직한 보좌관 김 오랑 소령은 전사하고 만다..그게 두고 두고 죄책감에 사로 잡혔던 장 태완 장군.그리고,특전사 정병주 소장은 팔에 관통상을 입는 불상사로 체포되고..그것도 자신의 직속 부하에 의해서...신군부가 들어선 뒤로 그들의 운명.오직 군인의 직분에 충실한 그들이 무슨죄가 있어서....울분을 되씹었던 정병수 특전 사령관은 목메 자살하고.....장 태완은 그 사랑하는 아들을 자살로 잃어야 했다.그 쓰린 가슴은 어떠 했을가?어디다 하소연 할수 있었을가?전두환을 추종하고 그저 몰라라 했음 한 자리했을거다..일신의 영광도 얻었고 , 사랑하는 자식도 잃지 않았을지 모른다.허지만,불의 앞에 결코 타협할수 없는 강직한 군인..비분으로 , 자살로 스스로 군인의 길을 간 그 분들..더 빛나 보인다.12,12 사태는 권력에 눈이 먼..군인 정신이 결여된 일단의 권력을 쥔 자들이 주도적으로 계획하고치밀한 작전하에 이르킨 구테타 일뿐.....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권력이 그리도 좋았을까?서울의 봄을 깡그리 뭉게고, 일단의 군인시대를 연 그들..성공한 쿠테타로 권력의 정상에 선 두 대통령.과연 역사는,이들의 행위를 정당히 평가해줄수 있을까?- 12,12 사태를 우발적인 사건 쯤으로 덮어 둘수 있을까..군인의 길을 끝까지 간 세 사람.달콤한 유혹에도 흔들림없이 자신의 위치를 지켰던 장군들..두고 두고 군인의 표상으로 길이 남으리라.-義가 아니면 켤코 갈수 없다는 군인의 길을 간 그 분들.어찌 존경 스럽지 않을손가.....군인은, 군인이었을때 더 멋이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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