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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하시네요 그런 일을 하셧다니..3년 지나도 멀쩡하면 

오지도 않은 5월 세금타령? 부과가 되질 않았는데 어떻 

비가 옥상 식물에겐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5월에 세금 

맞아요.그래서 불효부모사후회란 주자십회훈이 있나봅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선물을 주니 얼마나 즐거웠나요?부모님 

전 어제 아버지 생각이나서 하루종일 울었어요. 아버지 

맞아요, 세번 바르고 힘들었어요. 그래도 저흰 만족했 

할수만 있다면 하면 좋죠 그런데 그 기술이 과연 그수준 

오늘 수고하셨네요. 배가본드님^^드디어 옥상방수공사를 

일기장에 빨리 오셔서 이런 댓글 달아주셔 감사해요.행복
어쩌다가 생각이 나 수소문한 전화 번호.
강 채원씨.
지금은, 퇴직자 모임의 회장직에 있었다.
엊그제 통화하고, 퇴직자 명단을 보내준단다.
아침에 그 명단을 받아봤다.
20 여명의 명단.
너무도 생생하게 눈앞에 그려진다.
기억이란건, 세월을 뛰어 넘어 그 시절에 정지케 한거 같다.
강 채원씨,
그 분이 있어 내 부서는 늘 웃음이 맴 돌았다.
하루 일과를 끝내고 잠자리에 들 무렵에 그 분의 유머스러운 농에 모두들 깔깔대곤 했다.
-낼은, 고흥 앞 바다에 꼬막 케러가야니까 모두들 일찍 자세.
-그래봐야 결국은 새x 이야..
이런 얼토 당토 맞지도 않은 말에 모두들 스0트레스를 날려
버리곤했다.
고되고, 시말서 쓰고, 상사에게 얻어 맞고 해도 숙소에 들어오면
강 채원씨의 농에 모든 순간을 잊을수 있었다.
그 분은 고참으로 신참들의 고뇌를 알고 늘 바른소리를
해서 우릴 쉬원하게 해 주기도 했다.
상사에게 우리의 고뇌를 전달해 주는 가교역활도 마다하지 않았
다.
그 시절의 우리에겐 ,
그 분의 하나하나의 행동은 청량제 같기만 했다.
작고 땅땅한 체구의 짧은 머리를 바짝 이마에 붙였던 헤어스타일도 우스꽝 스럽기도 했고,천천히 걷는 팔자걸음도 웃긴 모습였다.
30 년이 지났지만, 너무도 생생한 그 모습 그 얼굴..
그때, 순천과는 관계없는 곳에서 살았던 사람들.
왜 지금도 그 순천에서 머물고 있는걸까?
윤섭이 형님처럼 제 2의 고향으로 생각한 건가...
직장에 몸 담고 있는 곳이 제 2의 고향으로 어느덧 가슴깊이
들어와 버린걸까?
-여기 들어온 사람들은 일단은 정상적인 사람으로 보면 안되요.
그 들은 교묘한 숫법으로 우릴 이용하거든요...
이용당하면 것도 챙피한 것이잖아요?
내가 보기엔,
그 김 규호란 사람도 사회서 어떤 관계인지는 몰라도 전과가
별로 좋지 않던데, 조심해요..
하고 규호를 내 성의껏 감싸준것을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던
정 해류씨..
그때, 그 선배의 말만 경청하고 ,주의를 했던들 그에게 그 같은
이용은 당하지 않았을 걸.......
그런 충고가 왠지 귀에 거슬렸던 그 때..
그 생활을 해 본 사람은, 귀중한 경험을 수 많이 했으니까...
- 한 사람의 재소자 이기전에,
한 인간으로 믿어 끝까지 배려해 주었더니 철저하게
배신으로 보답했던 잊지 못할 그 사람 규호....
그런 배신을 일찍 경험했던게 지금 생각하면 참 다행스런것이었단 생각이 든다.
두번 다신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았으니...
지금도 용서가 되지 않은 인간 김 규호..
그도 이젠, 상당히 나이가 먹었을 거다.
차마 나와의 기억을 잊지는 않았을 거다.
잊고 지냈던 30 년 전의 그 시절의 얼굴들.
오늘 흑백 앨범을 뒤지듯 다시 찾아내어 기억을 더듬어 그려보고
다시금 전화를 걸어 대화했다.
-그래,그래,
난 자네가 떠난 뒤로 전화한번 해 주지 않아서 변심한줄 알았네
참으로 반갑네..하는 건 오 한광씨..
그도 이젠, 퇴직하고 터 밭에 작은 농장을 경영함서 편히 살고
있단다.
세월속에.
뭍혀 버린 얼굴들.
다시금 한번 만나고 싶어진다.
아무리 거센 세파가 그들을 핧고 지나갔어도, 그 시절의 해 맑은 미소는 그대로 남아있으리라...
그럴거라 믿고 싶어진다.
추억을 미화하고 싶은 내 간절한 소망인지 몰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