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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본드
끊기면 또 만들면 되죠 이게 세상사 입니다 : 14 日目

예 놀던 곳...


  

어김없이 시골서도 운동을 했었다.
희끄무레한 안개가 들녘을 감싼 아침.
싸아한 아침공기가 귓가에 제법 시린 아침.
동쪽 하늘은 아직 해가 돋지 않은 아침에 걷는단 것이
그렇게 기분 좋을수 없었다.


평평한 들을 가로 질러 눈앞에 펼쳐져있는 듯한 금성산.
나주 사람들의 희망이며,자랑인 명산 금성산.
경사가 심하지 않는 산들이 완만한 선을 그으며 비슷 비슷한
높이로 마치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저 산의 정상을 따라서 한 없이 따라가 봤으면.....
그렇게 해 보고 싶었다.
끝까지 가면 아마도 바다겠지?
이쪽 하늘 끝에서 저쪽 하늘 끝까지 이어진 산줄기.
그 산줄기 안에 너른 나주 평야가 알을 품듯이 안겨있다.


아직은 파란 벼들이 충실한 결실을위해 물결치고 있다.
아마도 한달여만 되면 황금물결이 치겠지..
온 들녘을 풍요롭게 만드는 그런 계절.
너른 들녘은 고요할 정도로 정적에 싸여있다.
들 가운데 외로히 서 있는 정자...
우리 동네서 바라보면 서 있던 정자는 내가 어렷을때 봤던
그 모습 그대로 그곳에있다.
아마도 일이 끝나고 밤이면 모여서 놀던곳이리라.


금암 천주교회 앞에서 회룡쪽으로 도로를 확장하는 모양.
사실 버스가 다니긴 조금 비좁단 생각을 했다.
모두가 논이라 그 보상도 만만치 않을 텐데......


전에는,
겨우 리어커 정도 들락거리던 농로..
그걸 넓혀 버스가 다닐정도로 확장한건 한참 지난 뒤였다.
이런 도로도 면이든 군이든 입김이 작용해야 하는 공사라서
그 동네에 그런 사람이 있어야 가능한가 보다.
관에 가서 그런 하소연할수 있는 사람이 없는 우리 동네에 비하면 회룡은 아직도 그런 젊은이 들이 많이 살고 있다.
아니 워낙 인구가 많은 동네라서 아직도 생기가 넘치는 동네로
보인다.
전통적인 부촌이고, 인구가 많은 동네.


도로 확장 공사로 천주교회의 담장도 헐었다.
어렷을적엔,
아무런 의미도 없이 다녔던 < 노안 천주교회 >
늘 그 모습 그대로 더니 몇년전에 새로 지은 모양이다.
그때 천주교회를 다닌건,
거기 가면 분유를 주었었다.
향긋하고, 달콤했던 분유..
그걸 얻어 먹을수 있다는 기쁨.
그것 때문였다.
나에게 천주교회의 교리가 생소하지 않은 것도 그때 잠시
다녔던 경험탓이다.


면 소재지를 옆에 두고,
우측으로 걷는다.
웅장하게 보였던 < 돌포다리 >
늘 폭포처럼 흘렀던 물과 깊고 맑았던 시냇가..
초등학교시절엔,자주 여기로 왔었다.
체육시간에 여기서 씻고, 물장구 치고 놀았던 그 다리 그대로다.
다리난간이 군데 군데 부서지고,
회색으로 변한건 세월탓........
섭이 성환이, 성진이,점례,휘봉이 등등..
지금은 어디서 뭣을 하고 있을까?


돌포다리 지나서 들가운데로 난 길을 조금따라 가면,
< 노안 초등학교 >가 나온다.
내가 다녔던 이 학교.
일제시대의 목조건물은 간데 없고, 붉은 벽돌로 그 자리에
지어진 교사.
아담한 2 층양옥으로 4 개동인가?
예전의 그 목조건물이 사라짐이 아쉽다.


두 사람이 양손을 벌려야 닿을수 있었던 프라타나스..
이젠, 그 나무는 간곳없고 밑둥만 그대로 서 있다.
< 문병보 교장선생 공덕비 >가 운동장 한켠에 이끼낀 모습으로
쓸쓸히 서 있다.
1976 년에 세웠단 것이 써 있다.
장기간 복무하셨던 문 병보 교장선생님
인자하시고, 많은일을하셔서 주민들이 공덕비를 세웠나 보다.
내가 다녔을때,
이 교장 선생님의 표창장도 몇장이 있는거 같다.
마치 잊고 지낸 친구를 만난 거 처럼 반갑다.
그 이름 만으로...


학교옆으로 도로 따라 줄지어 서 있던 점방들..
쉬는 시간에 사탕을 사 먹으로 왔던 그 많은 상점들.
여전히, 그대로 있지만 모두가 퇴락하고 볼품없다.
-수남이네 점방가서 과자 좀 사와라.
하고 심부름 시켰던 김 경자 선생님.
내게 그림도 그리게 했고, 유난히 심부를도 잘 시켰던 분.
누구보담도 날 귀여워 해 주시던 그 선생님.
살짝 웃으면 볼에 패이던 볼 우물이 매력이던 그 여선생님.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계실까?
궁금하다.


정문앞에,
세워진 < 광주 학생의거 기념탑 >
광주학생 의거의 도화선이 나주에서 연유했다고 해서 세운건가
보다.
거창한 문구와 그비를 세우는데 협찬한 인물들..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이름은 그대로 세겨져 있다.
한때 군수까지 바라봄서 꿈을 키웠던 동해형님.
암으로 그 꿈은 물거품이 되었지만, 이름만을 그대로 있었다.
언제까지 그대로 서 있을려나?


이편과 저편이 매우 멀어 보이던 운동장.
별로 큰 운동장도 아닌데 왜 그렇게 넓고 웅장해 보였을고?
-우리편아 잘 해라, 저쪽 편도 잘해라..
우리들은 다 같은 새 나라의 어린이..
이런 운동회 노래가 교사 저편에서 들리는듯 하다.
머언 추억이고,모두가 가슴시리도록 그립고 아름다운 추억이다.
세월은 가도 , 예전의 모습은 여전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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