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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본드
끊기면 또 만들면 되죠 이게 세상사 입니다 : 14 일째

백 마디 말 보다 행동이 중요하다


  
한문에 조예가 깊으셨던 조 부님.
오랫동안 훈장이셨다.
돌아가실때 까지 시천교의 열렬한 교인였고....
아들 여섯, 딸 둘을 나으셨다.
-제 먹을 것은 갖고 태어난다는 걸 믿으셨나보다.

꽤 잘 사셨던 것으로 기억된다.
허지만, 여덟째중 막내인 아버지.
자식들에게 다 주고 나니 없었는가?
아버지껜, 어떤 전답도 물려주지 못해
가난은 숙명처럼 달고 사셨던거 같다.

그런 가난이 싫고, 운명을 돌리고 싶으셨을까
결혼한지 얼마 되지 않은때....
큰 누나와 어머니 놔 두고 일본으로 가셨단다.
동포들이 젤로 많이 산다는 오사카..
허지만, 특출한 기술이나 무기가 없었던 분이라...
공장생활중에,
기관지 천식만 나빠져 평생을 치유하지 못하고 사셨다.

가실때,
관리해 달라던 집과 전답(그 전답이라야,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의 작은 토지였겠지만.....)은 몽땅 큰 아버지가 차지하고
사셨던 형편이라 차마 되돌려 달란 말을 못하고 새 출발하셨단
애길 들었다.
-당연히 돌여줘야 하는데 주지 않은걸 어떡게 억지로 달라고
그런다냐??
하셨던 아버지...
정에 약하셨던 아버지.

일본에서 몇 년간 번 돈과 외가에서 보태준 밭 몇떼기로
새로 집을 짓고, 새 출발했으니, 어려운건 마찬가지....

건너 마을에 사셨던 조 부님.
가끔,
막내인 아버지께 들리셨다.
그런 조부님을 무척 미워하신 외 할머니.
-그까짓 영감, 할아버지라고 부르지도 마라.
어떻게 막내에겐 , 밭떼기 하나 물려주지 않고 그렇게 먼
낯짝으로 왔다냐??
난,그 영감 쌍통도 보기 싫더라.....
조부님을 미워하는 외 할머니의 심정도 이해가 간다.
딸 고생시키는 시아버지가 이쁠리 없겠지.
허지만, 어머님은 며느리로써 정성껏 맞으셨다.

그 많은 큰 아버지와 고모들.
우리 보담은 더 잘 사셨다.
가끔 가 보는 큰 댁은 늘 사람들의 발길이 북적거렸고...
훈장였던 조부님의 겨울 동안의 수입도 꽤 짭잘했나 보다.
항상 낭낭하게 들렸던 책 읽던 소리가 대문 밖에 까지 들렸다.

퍽 가난했다.
허지만, 그런 가난했단 이유로 부모가 원망스럽게 비친적이
한 번도 없었다.
-왜 일본에서 눌러사시지,왔어요?
거기 살았음 이 보담은 더 잘 살았을 지도 모를텐데...
이런 투의 원망이 다 였다.
-글쎄다.
그때, 오지 말고 살걸....
그런데 , 그때 해방되면 일본사람들이 조선사람을 다 내 쫒은단
말도 있었고, 보복을 할거란 소문이 퍼졌어.
그래서 모두 귀국하려고 난리들였지...
하셨던 어머님.
불안한 미래가 눌러있게 하질 못했나 보다.

가난했어도 , 어떤 비굴한 모습이나 당당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던 당신들....
지금 생각해도 존경 스럽다.
6 남매를 누구하나 상처주지 않고 키워 주셨고.....
아무리 배가 고팠어도 식량이 떨여져 굶은 기억은 없다.
물론,
옆에 사셨던 외가의 덕을 본것이 사실이지만.......
그 만큼,
당신들은 삶에서 자식들을 위해 헌신한 것일거다.

아버지나, 어머니나 삶에 성실하셨고,열심히 사셨다.
주어진 환경에서 열심히 일 하셨고, 겨울엔 돈이 되는 부업은
힘든 일도 마다않고 하셨다.

부모님의 보여준 교훈.
그건, 올바른 삶의 실천.
가난했어도, 늘 오손 도손한 부부.
폭력이나 , 폭언을 쓰시는걸 들은적도 본적도 없으셨다.
이 보담,
더 좋은 교육이 어디 있을까?

-항상 믿음이 들고.
늘 존경 스럽고.......
늘 어려워 먼 발치서만 대화를 나눴던 아버지.
늘 아버진, 먼 위치에서 근엄하게 서 계셨다.

-어른이 어른답지 못한 요즘.
사랑하는 자식을 자신의 분신쯤 , 장식품 쯤으로 치부한
건지, 삶이 고달프다고 차디찬 강물에 던져버리다니.....
카드빚 때문에,
자식까지 동반 자살하는 어른들.
어려운 환경에서도 모범적인 행동으로 우릴 키워주신
부모님이 새삼 존경스럽고 맘껏 효도 못한것이 두고 두고
후회만 든다.
인생의 모든것이 후회 투성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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