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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억, 얼마나 놀라셨을까요?그리고 한동안 많이 힘드셨 

그렇죠 종합소득세와 재산세는 5월에 냅니다그거 받고 

사업자 종합소득센가 뭔가 5월말까지 내라고 납부 영수증 

맞아요, 아무나 할 순없지요.남편이 이런저런 잡다한 

대단하시네요 그런 일을 하셧다니..3년 지나도 멀쩡하면 

오지도 않은 5월 세금타령? 부과가 되질 않았는데 어떻 

비가 옥상 식물에겐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5월에 세금 

맞아요.그래서 불효부모사후회란 주자십회훈이 있나봅니다. 

사랑하는 아들이 선물을 주니 얼마나 즐거웠나요?부모님 

전 어제 아버지 생각이나서 하루종일 울었어요. 아버지 

-힘은 들어도 ,
남을 돕는단 것이 보람된 것이고 일종의 서비스라
생각하면 뿌듯하기도 한 업무에 비중있는 사무라 특별
한 배려니 열심히 해 알았지?
-열심히 하겠습니다.
처음,
남가좌 2 동으로 발령받아 갔을때, 나이든 동장님의
첫 말씀였다.
신흥주택지라 설까.
왜 그리도 영세민이 많았던지..
겨울은, 차분하게 사무실에서 일을 볼수조차 없었다.
개천변의 뚝방에 쭉 쳐진 움막들.
거긴,매일 매일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사람들이 모여서
살고 있기에 간밤에 어떤 사고(동사, 아사등등의 사고)
가 났을지도 몰라 순찰을 해야 했기에........
-그래도 그 시절이 더 살기 좋았던 시절일까.
아님, 그래도 인정이 살아있어설까.........
겨울동안,
노숙자들이 얼어죽지 않고 견딜수 있는 보호시설.
잠은 무료에다, 저녁은 라면을 끓여먹을수 있는
아담한 천막을 운영했었다.
그 업무가 바로 내가 맡은 업무.
물론 밤을 지새우고, 그 시설을 관리하는 전담요원을 별도로
채용해서 겨울을 무사히 넘기게 운영했었다.
잠만 자고 낮은 그들나름대로 돈 벌이 나갔다가 밤이 되면
찾아오곤했지.
낮은 힘들어도 밤은 포근히 잠을 잘수 있는 거처가 있었으니
요즘의 한데서 잠을 자야 하는 노숙자들에 비하면 그래도
행복한 시절이 아니었을까.........
그 노숙자시설의 운영은 대 부분이 주민들의 이웃돕기 성금
으로 충당했던거 같다.
상부에서 연탄난로에 드는 연료비 정도 지원했나...??
가끔 낮에 순찰돌면 일단의 노숙자들이 라면을 끓여먹음서
함께 먹었던때도 있었지.
관의 배려에 고마워 했고, 그 시설을 서로가 깨끗히 이용해서
운영엔 애로가 별로 없었다.
가뭄에 콩 나듯.........
어떤 술 취한 노숙자가 찾아와 주정을 부린것도 있긴 했지만..
대 부분의 사람들속에서 배겨나지 못하곤 수그러 들었다.
-가난한 사람을 외면하지 않고 지원했던 사람들..
-배품에 고마워했던 수혜자들.
가잔자와 못 가진자의 대립각이 아닌 정으로 주고 받은
훈훈한 마음으로 겨울을 살았었다.
순수하고, 고와서 일하기도 보람이 있었다.
-지난 일들이라 미화되어 그런걸까?
비록 풍부하지 못했어도, 인정이 살아숨쉬던 70 년대.
이웃이 감시와 경계의 대상이 아닌 친근한 인간관계.
그런 포근한 인정이 살아있던 시절이 새삼 그립다.
내가 살아온 70 년대의 서울은 훈훈했다.
꽃 보다 아름다운 인정들이 남아있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