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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본드
공부


  
이 교육원에 왔던게 1991 년 5 월.
봄 였다.
감회가 무량하다.

처음 여기 왔을땐, 저절로 욕을 했더랬지.
-미친 놈들, 이런 산골짜기에 무슨 교육원이람..
지하철 없던 때라, 말죽거리에서 버스를 타고 와서
한참을 걸어야 했던 원 거리에 욕을 한것.

지금도,
남부터미널에서 한참을 걸어야 하는 곳에 있다.
서울에서, 이런 명당에 교육원을 만든 혜안이 놀랍다.
당시는, 아마도 몇 푼들지 않고 부지를 확보했겠지.

그땐,
프라이드 타고 일찍와서 산에 올라 아침을 먹었더랬다.
기분이 상쾌하고, 부지런한 내 자신이 좋았고..
허나 그 이유는, 운전조차 서투른데 덜 밀릴때 빨리 오겠단
의도가 이유였지.
-왜 이렇게 빨리오세요?
-집이 워낙 멀어서요.....

그때의 내 마음.
결코 마음 편하게 교육을 받을수 있는 상황은 결코 아니었다.
3 주간의 출 퇴근였지만....
서울대 병원에선 매일 어머님의 수심에 잠긴 모습이 있었다.
그런 우울한 상황을 말끔히 잊고 공부에 전념한단 것이
쉬운게 아니었지.
-어찌 보면 이런 공부는 내 자신을 위한 것 일뿐...
어머님의 입장에선 달가운 것이 아닐거다.
공부한단 핑게로 휴일에도 병원을 가 보지 못했으니...
늙으신 어머님이 계신 곳을 3 주간을 가보지 못했으니
얼마나 섭섭했을까?
병문안이라고 해야 어쩜 어머니를 위로하러 간단것이 더 맞는
애길거다.

5 시에 출발했을땐,
배가 고프지 않아 저녁을 걸렀더니...
3 시간내내 배가 고파 혼났다.
첫날이라 그런건가?
딱 10 분 쉬고 열강을 하는 교수.
그저 듣고 편하게 잊어도 좋은 강의가 아니다.
하나 하나 시험이 나올지도 모를 것들.
노트에 필기해야 한다.

강의실에,
300 여명을 넣고 하는 강의가 제대로 될까?
정확히 302 명중에 나온사람은 300 명?
공로연수자와 현직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이 대 부분.
50 대가 절반이 넘었다.

-과연 이 짓을 해야 하는가?
이 먼곳까지 와서 3 시간 강의를 들어야 하는가?
오면서, 가면서 길에 버린 3 시간의 안타까움.
그건 또 어떡하고??

올 필요는 있다.
내가 어떤 나태에 젖어있을때 열성적으로 수강하는 학원생
을 바라본단 것은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하는 것이라....

10시에 종강.
교육원 버스가 남부터미널까지 태워다 준다.
영란이와 세현이의 전화가 왔나 보다.
피곤하고 배가 고프고..
도대체 내가 이게 뭐하는 거냐?
파 김치 되어 들어오니 11 시 30 분.
2 호선 전철은 발 디딜 틈조차 없다.

< 인내는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 >
학창시절에 책상앞에 써 둔 누군가의 명언.
쉬운것이 뭔가?
쉽게 얻은것에 귀중한 것이 어디 있던가...
해 보자,
오르고 오르면 그 산에 정상에 오를수 있으리라.
<중도에 포기말고 끈질기에 도전하세요>
어제 강사의 말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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