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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금자리


  
어제 이어 오늘도 운동을 접어야 했다.
밤새 비가 추적 추적 내렸나 보다.
벌써 학원간단 사실이 걱정이 된다.
비 오면 차가 밀린단것..
어김없이 벌어진 일들이라......

시골에서 학교 다닐때도 왠지 가까운 학교를 두고
먼 곳으로 다녔었다.
결코 그학교가 명문이 아닌데....
그 만큼 고통이 더 컸단 애기.
비가 오던가, 눈이 많이 내리던가...
기후에 민감하게 대응했던거 같다.
가고 옴이 걱정였다.
교통수단이란 것이 자전거 아님 걸었으니까...
그런게 습관이 되어설까?
그 뒤로 직장은 늘 집과 가까운 곳이어야 한단
조건을 걸었었지.

영란이 낳자마자 소아병원에 입원을 해야했다.
딱 한달 동안...
자꾸 먹음 토한단 것이 이유였지만 왜 그랬는지.??
지금도 모른다.
한달후에 대머리로 나타났던 영란이.
영락없는 사내아이 같았다.
그 한달 동안 쭉 병원을 들락거렸던 건 장인..
와이프가 이런 저런 핑게로 장인을 설득했지만...
실은 그런 이유로 용돈도 두둑히 드렸던거 같다.

그 한달 동안을,
처가에서 출근했었다.
정릉에서 서대문까지의 고통..
그땐 전철도 없던때라서 2 번버스 타고 창경원을 해서
사직공원을 통해서 서대문서 또 129 번을 갈아타야만
하는 원거리..
아마도 2 시간은 소요되었으리라.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그 버스는 늘 만원..
짐짝처럼 이리 저리 떠밀려 다녔던 한달동안..
1 달동안의 고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겉보리 서말이면 처가살이를 하지 않는다는 말
절감했었지...

자유가 없었다.
그런 불편함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와이프가,
아무리 비위를 맞춰줘도 편치가 않았다.
처가는 정릉의 다닥 다닥 붙은 단독,
처가살이의 불편함이란 걸 너무도 잘 알수 있을거
같다.
젤로 서먹 서먹한 관계가 처남댁과의 관계...
그런 위치를 알고 편히 해준다고 해 주었는데도 왜 그렇게
모든것이 불편했는지......

영란이가 퇴원하고 우리집으로 돌아오던 날..
하늘을 날것 같았다.
우린 기분좋게도 화곡동으로 이살 왔지.
새 집으로 이사올때의 그 기분은 뭐라고 할수 있을까?
4 톤 트럭의 앞자리엔 장인이 영란일 안고서 따라오셨다.
처음으로 이사온 화곡동의 아담한 단독
대지 48 평에 건평 25 평의 아담한 단층 주택.
너무도 좋았었다.
봄날의 햇볕이 찬란한 3 월였으니까...

장인의 표정도 행복한 모습으로 비쳤었다.
결혼 4년만에 이런 단독을 장만한단 것이 쉬운건 아니니까.
당시만 해도 아파트 보담은 단독이 주류였으니까...

1983 년도 3 월에 이사갔던 화곡동 그 집.
남향의 좋은 위치였다
바로 앞집 성진이네 집은 사시사철 꽃 향기가 진동했고..
영란이도 자주 그 집에서 사진 촬영을 했었지..

이 근방으로 이사온지 20 여년,
아직도 여길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떤 숙명처럼....
이젠 벗어나고 싶은데, 여길 떠나면 또 다시 그리워지겟지
마치 고향처럼.....

이사 가야한단 명제는 서 있다
와이프도 그걸 잘 알고 있다
어젠 안산것과 다른 곳을 물물 교환조건으로 다녔던 모양인데
어디 좋은 곳이 있어야 말이지.....
인천으로 경기도 화성까지 갔다왔다고 하지만...
별로 맘에 들지도 않는다.

이젠 입지 좋은 집,
그런 곳으로 이살가고 싶다.
오늘 왜 이런 집애기가 생각난 건지 모르겠다.
집에 대한 불만이 자연스럽게 나왔는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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