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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사 1신앙촌, 덕소 제 2신앙촌,기장 제 3신앙촌.
가장 초창기에 세워진 곳이 소사 제 1 신앙촌였다.
그리고 신앙심이 돈독한 사람이 들어갈수 있는 곳이 제 2 신앙촌
그리고 다음이 최고신앙인들의 거주지 경남 기장 3 신앙촌.
소사에서 안내원으로 함께 근무했던 광남씨.
지금 덕소에서 살고 있다.
이번 주 토요일에 자기집에 오란다.
옛날 안내원 시절에 함께 근무한 직원들을
부른단다.
광님씨와 난 거의 막내격이엇던거 같다
나이가 서로 비슷했지만 안내원 중에서
젤로 나이가 어렸으니까...
-아니 그 날이 무슨 날이야?
생일이라던가..
-아냐...
그냥 예전의 사람들 보고 싶어 부른거야
부담없이 와줘.
용산에서 덕소가는거 전철있어
한 40 분정도면 도착할거야..
-알았네..
가장 어려운 시절에 그리고 방황의 시절을 보낸
신앙촌 생활 2 년.
단 2 년간의 생활에서 왜 이렇게 잊혀지지 않고
각인되어 있을까?
한번도 떠난적없는 고향을 떠나 타향으로 간단 것은
쉬운것이 아니었다
허지만 너무도 암담한 장래.
내일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 현실.
그 와중에서 이모할머니의 신앙촌
애기는 환상의 세계처럼 들렸었다
<그래 내가 탈출하는 길은 바로 신앙촌
으로 가는 길 뿐야..
어떤 선택이 있을수 없어>
-이상향였나?
아니었다
냉혹한 현실이 거기에 있었다.
내가 꿈꾼 그런 이상향이 아니었다.
-공부도 하고 돈도 벌고..
그럴 야심은 여지없이 깨졌다
입에 풀칠하기 위해선 일을 해야 했다
흥미도 없고 소질도 없는 일들
공장에서 일을 해야 했다
그래야만 목구멍을 유지할수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들어간 <안내원>
말이 좋아 안내원이지 경비였다
신앙촌을 지키는 수비대.
군대처럼 단체 생활을 했었고
나름대로 젊은사람들과 합류하다 보니
작은 꿈이나마 꿀수 있었다.
입대 하기 전까지........
신앙촌 생활 2 년,
귀가할땐 맨 몸이었다.
겨우 목에 풀칠하기 바뿐 수준의 보수
당시의 안내원 봉급이 800원이라면?
지금 얼마나 될까?
한 10 여먄원??
<신앙>이란 미명하에 노동력을 착취한
그 자들.
다들 그랬었다.
취직한다고 해 보아야 겨우 교통비 정도
모든게 주님사업이라고 하는데야 누가
토를 달겠는가?
암담한 시절에 한때 한 직장에서 몸을 담고
애환을 나누던 친구들
그들과 하루 정도 담소 나는단것이 무의미
한것은 아닐거 같다.
다 예전의 것들은 다 소중한 것들이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