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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본드
영숙이와 명자

학교생활만 하다가 사회생활로 들어섰던

어찌 보면 참담한 현실의 신앙촌,

신앙촌에 입촌한건 신앙과는 거리가 먼

아니 신앙이라곤 겨우 친구따라 몇번 다녔던 교회

가 신앙생활의 전부였다.

헌데도 막강한 이모할머니의 빽(?)으로 입촌할수

있었던 것은 그 분의 그 만큼 돈독한 신앙이 없었

으면 불가능한 일였다.

 

오늘도 내일도 내 꿈을 영글게 하는건 불가능해

보이기만 했던 척박한 농촌

어떻든 그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절대절명의

긴박감이 그렇게 고향을 떠나게 한 모양.

1966 년 3월.

그 이후론 고향을 찾는건 늘 잠시머물기 위한 것

일뿐...

정을 붙이곤 살지 못했었다.

그렇고 보면 그때 신앙촌을 찾는것이 결국은

고향과는 이별을 한 셈이었다.

 

가난했지만,

부모님의 보살핌 속에서 공부만 하다가 막상

사회생활로 들어서고 보니 고생은 감수해야

했다.

놀고선 입에 풀칠조차도 할수 없었으니.......

 

취미도,해 본적도 없는 생소한 공장생활.

고향을 떠날땐 꿈이 부풀었는데 내 앞에

부딪친 현실은 너무도 처량했다.

-시간이 아까워 길을 가면서도 단어장을 손에

놓지 않고 외웠던 영어 단어.

-몸은 피곤했지만 하나라도 더 배우고자 호롱불

밑에서 책을 읽었던 지난 날의 나.

헌데 지금의 현실은 그런것은 아무소용에도

없었지.

손놀림이 좋은 상범이는 매일 매일 나 보담

배가 더 많은 돈을 벌수 있었지만 난 그게

아니었다.

<쳇 이짓하려고 그렇게 고생함서 공부했나??

왜 내가 여기서 있는건가?

지금 이럴때가 아니지 않는가....??>

일을 하면서도 내 초라한 현실에 얼마나 모멸감을

느꼈는지 모른다.

허나.........

어쩌랴..

떠난 고향을 다시금 찾아간단것은 자존심이

허락치 않는것을.......

 

<당분간이야..당분간만 이렇게 지낼거야..>

그 당분간이란 것이 2년을 허송세월을 보내고

말았다.

그 황금같은 시간을 그렇게........

 

영숙이와 명자.

신앙촌에 살면서 공장에 다녔던 영숙

시골에서 올라온 명자.

매사에 신중하고 생각이 깊은 영숙이와

덜렁대는것은 있어도 명랑하고 사근사근한

명자.

두 사람을 다 좋아했었다

나름대로의 매력때문이었나?

 

-오빠>

오늘 영숙언니와 명자언니가 싸웠어.

알고 보니 오빠 때문인거 같아.

-왜 내때문이야...

-암튼...

물론 영숙이와의 인연은 오래되었고 늘 그녀의

집을 바래다 주면서 정이 들었었지만 늘 그 정도의

위치에서만 맴돌았고 그녀도 마음으로만 그랬었지

호감을 직접적으로 표시한건 아니었다.

물론,

두 사람과도 사귀고 싶었지만 현실은 연애란

사치쯤으로 생각이 들어 감히 그럴 엄두도 내지

못했었던것.

은근히 내가 대쉬하기를 바랬던 영숙이와

능동적으로 대쉬해 오던 명자.

간간히 편지도 보내고 직설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했던 명자.

<널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군 입대

영숙인 모든것을 체념했지만 명자는 끈질기게

편지를 보냈었다.

좋아하는 감정은 헤어지면 더하는가...

내가 중간에 안고 셋이서 다정하게 찍은 사진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두 사람은 그저 우정으로 지낸시절

이었을거다.

우정이 증오로 바뀐건가?

 

-잘 있거라 잘 가거라 목포행 완행열차야..

헝클어진 이별도 팔자란다 아~~~

그 노랠 불렀던 영숙이와 명자.

지금은 초로에 들어선 두 사람

어느 하늘아래 살고 있을텐데 그들도 셋이서

찍은 사진을 바라봄서 한때의 아쉬운 정(?)을

그리워 하고 있을까?

 

-멀리 소사읍을 바라보면 한가하게 기차가

달리던 시골풍경과 범박리 고개를 넘을때의

설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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