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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본드
끊기면 또 만들면 되죠 이게 세상사 입니다 : 14 일째

민주화의 큰별 김 대중대통령 가시다

2009년 8월 18일 오후 1시 43분 김 대중 전임 대통령 서거.

어제, 뉴스중에 떴다.

비록 약물에 의한 것이라 해도 점차 안정을 찾아가는중이란 말에 호전을 기대했는데...

병마의 고통에서 이겨내지 못하고 서거했다.

 

1924년 생이니까 86세로 어쩜 천수를 누렸다볼수도 있는데 왜 이리 허전할까?

아직도 우리나라를 위해 봉사할 일이 너무도 많은데 가신게 안타깝다.

2000년 6월 15일의 <6.15 선언>으로 남북 화해의 물꼬를 트셨고,

역사적인 평양 방문으로 분단이후 남북간의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첨였지.

통일의 초석은 닦아진듯 보였다.

동서독 화해의 물결을 튼 브란트가 되기 원했던 그.

통일조국의 먼 미래를 위해 분투했던 그.

그와 노 무현대통령까지 이어내려온 <6.15 선언>이 퇴색된듯한 현실을 바라봤을때..

얼마나 답답했으랴...

 

 

1971년도 박정희 대통령과의 맞대결.

40대의 생기빌랄하고, 당찬 모습의 웅변으로 사자후를 토하던 그 모습.

사진으로 봐도 생생하다.

-이번에 정권교체를 못하면 박 정희씨는 총통제로 영구집권을 할겁니다.

그런 예상은 적중했다.

46%의 득표를 한 김 대중대통령의 위력(?)앞에 직선제로 가다간 정권을 잃을걸 우려한

박 정희 대통령은 저 유명한 <유신헌법>이란 걸 만들어 그의 말대로 영구집권을 노린거

아니던가?

그리고 일본에서 납치되어 현해탄서 수장당할뻔한 일.

중정의 짓이란 추측뿐...

그 배후가 누군지 밝혀진게 없다.

그 당시의 김 대중은, 군사독재자의 눈에 가시같은 존재.

글고, 사라진 유신독재.

3김만이 정권을 얻을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봤고 그건 역사의 순리로 믿었다.

최 규하 대통령권한 대행도 새 봄엔 대선을 치를거란 애기도 해서 진정한 민주주의가

도래한줄 알았는데........

권력의 단맛을 안 군부.

이 절호의 기회를 어찌 노칠건가.

 

3김을 꽁꽁 묶어 활동을 못하게 하고서 자신들이 정권을 쥐기위한 묘수찾기.

그게 바로 광주를 희생양으로 만든 5.18이 아니던가?

광주를 피 바다로 만든 <5.18 광주민주항쟁>

그러나,

역사란 순간은 속일수 있어도 영원히 속일수 없는것.

속속드러난 신 군부의 만행들.

시민들이 그렇게 총살을 당했는데도 정작 발포자는 없었고 자위권발동으로 알아서 총을 사용했단

애긴데.........

소가 웃을일 아닌가?

발포명령자가 없는데 군인들이 스스로 알아서 자위권 발동으로 총기를 사용했단다.

군대같은 지휘계통이 확실한 집단에서 가당치가 한 애긴가?

그리고,

가시같은 존재인 김 대중대통령을 제거하기 위해 광주사태 배후조종 혐의로 사형언도.

국제사회의 압력을 견디지 못한 신 군부는 그를 미국으로 추방한다.

미국을 위시한 국제여론으로 목숨을 건진 그는 고국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2년 3개월의

망명생활을 한다.

그리고, 그의 신변보호를 위해 미국의 경호아래 귀국하자 마자 연금으로 그의 손발을

묶어 버린다.

 

1987년의 6.29선언과 함께 직선제 채택.

y.s와의 단일화만 되었던들 군사정권을 종식시킬수 있는 절호의 기회.

허나,

두 거목은 어제의 동지가 아니었다.

자신으로의 단일화만이 유일한 방안.

비정한 권력을 얻기위해 양보가 없었다.

얻을수 있는 기회를 두 사람의 불화로 다시 노 태우 대통령을 만들었지.

국민의 비난은 당연했고,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던 족적이 많이 훼손됐다.

y.s,j.p와 노 태우 대통령과의 3당 합당으로 나온 <민자당>

민 자당의 y.s

평민당의 d.j의 대결.

14 대 대선에서 또 다시 고배를 마신 그는 정계 은퇴를 발표하고 영국으로 간다.

15 대 에서 다시 d.jp연합으로 승리.

4수만에 얻은 한국역사상 최초의 정권교체.

그리고, imf의 금융위기와 조기졸업.

<준비된 대통령>이란 명성대로 슬기롭게 극복한건 남다른 경제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축적된

것이 아니었을까.

 

남북화해 물결을 튼것.

남북긴장 완회를 위해 평양을 방문하고,이북을 지원한것.

그가 아니었다면 과연 누가 할수 있었을까?

한국최초의 노벨 평화상 수상.

우리의 자랑이었다.

 

김 대중 전 대통령의 업적이라면 뭐니해도 몸을 던져 투쟁한 <민주화 투쟁>

그리고,

남북긴장완화를 위해 평양을 방문 김 정일로 부터 <6.15선언>을 얻어댄 것이

아닐까?

일부에선 퍼준것이 결국은 홱무기를 만들었다고 비난도 하지만....................

그건 지엽적인 것이 아닐까?

<햇볕정책>은,

북한을 통일의 광장으로 끌고 나오기위한 어쩔수 없는 선택였다.

김 대중, 노 무현 대통령의 10년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하지만......

분단이후, 그 10년보다 더 화기애애한 시절이 있었던가?

 

파란 만장한 86년의 생애.

국내보다,

세계적으로 그 명성이 높은 김 대중 대통령.

긴장완화가 끊어져 다시 긴장국면을 바라볼때 가슴아파했지만.......

<햇볕정책>은 통일의 초석이 될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래서 온 국민이 애통해 하는거 아닌가?

 

이젠,

힘든 나래를 펴고  편안한 휴식을 취하십시요.

우리국민과 역사는 영원히 당신을 기억할것입니다.

김 대중 그는,

인류평화를 염원했고,

<한국 민주화의 화신>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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